지난 2000년 설립된 ㈜이비는 교통카드 및 전자결제 관련 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회사로 경기·인천을 비롯해 충남 강릉 제주 등지에 독점적으로 버스 및 택시 교통요금 결제 시스템 운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01년 16억 원가량의 매출액을 올렸고 그 규모는 2002년 72억, 2004년 420억, 2007년 750억 원으로 매년 가파른 속도로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교통카드 사업이 한계에 부딪히며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이 급감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난 4월 일부 사업부를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이비가 매물로 내놓은 것은 교통카드 서비스 부문과 이와 관련한 유비베스트 경기스마트카드 충남스마트카드 등의 자회사다. ㈜이비 측은 “차세대 유비쿼터스 전자결제 시스템 개발과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해외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경기침체 탓에 한동안 잠잠하던 M&A 시장에서 이비카드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예상 밖이었다’는 평가다. 국내 4대 그룹 중 현대·기아차그룹을 제외한 삼성 LG SK가 인수 의사를 밝혔고 롯데 KT 한화 등도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몇몇 사모펀드들도 가세했다. 한 M&A 전문가는 “이비카드 인수전은 비록 규모는 작아도 역대 그 어느 M&A보다 화려하고 막강한 후보들이 참여했던 것으로 기록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앞 다퉈 이비카드를 손에 쥐려 했던 것은 정체기에 접어든 교통카드 사업을 원했다기보다는 자체적으로 보유한 카드 부문과의 연계를 통한 사업 확대를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멤버십 카드 서비스 경쟁을 펼치고 있는 SK KT LG 이른바 ‘통신 빅3’가 모두 출사표를 던진 것이 관심을 모았다. 이는 향후 통신시장에서 치열한 영역 다툼이 벌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한화는 향후 종합금융그룹으로 변모하는 데 있어서 이비카드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인수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후보군은 삼성 LG 롯데로 줄어들었다. 지난 15일 마감된 본입찰에서 이들 3사만이 인수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중도에 포기한 기업들과 사모펀드 등은 예비실사 결과 ‘인수 가능성이 희박할 뿐 아니라 시너지 효과도 미미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초반 인수전에 참여했다가 본입찰을 포기한 기업의 한 관계자는 “인수하려는 의지는 강했지만 한 곳이 낙점됐다는 소문이 파다해 우리는 힘들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일찌감치 발을 뺐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인수전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것 중에서 가장 치열했다. 우리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본입찰이 싱겁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3파전으로 좁혀진 본입찰에서는 LG그룹 계열사인 LG CNS가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시 교통카드 서비스를 독점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한국스마트카드 지분 22.25%를 보유하고 있어 서울시(지분율 35%)에 이어 2대주주에 올라있는 LG CNS가 이비카드를 인수할 경우 서울-수도권-인천을 연결하는 통합 교통시스템 구축이 빨라질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시너지 효과 측면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LG CNS는 지역 간 교통카드의 호환작업이 간편해진다는 점도 내세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일각에서는 LG 측의 이번 인수전 참여가 SK텔레콤과 KTF에 비해 약한 것으로 평가받는 멤버십 카드 서비스를 강화하려는 그룹 차원의 움직임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삼성에서는 국내 IT서비스업계 1위인 삼성SDS가 나섰다. 지난 몇 년 사이 M&A 시장에서 좀처럼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삼성이기에 이번 인수전 참여는 재계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삼성SDS의 이비카드 인수는 기존의 카드사업 강화는 물론, 향후 전자화폐 및 모바일금융 시장 진출을 대비하려는 포석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일각에서는 라이벌 IT서비스업체인 LG CNS가 서울에 이어 타 지역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려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모기업인 삼성과 LG가 펼치는 라이벌전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시각인 것이다.
롯데에서도 IT서비스업체인 롯데정보통신이 M&A에 뛰어들었다. 롯데정보통신은 인수 초반부터 LG CNS와 삼성SDS에 비해 한 체급 아래로 평가받아 인수가 힘들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풍부한 현금보유고 덕에 지난해부터 각종 M&A의 단골로 거론돼온 롯데의 저력이 발휘될 것이란 말도 흘러나왔다.
특히 신동빈 부회장이 금융사업과 M&A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터라 이비카드 인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그룹 수뇌부의 전폭적인 지원사격이 예상됐었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롯데정보통신 이외에 그룹의 M&A 전략가들이 이번 인수전에 가담한 것으로 안다. 다른 기업들에 비해 그렇게 크게 뒤처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향후 금융사업 등과의 연계 효과 등을 매각 주간사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의 IT서비스 계열사들이 각축을 벌였던 이비카드 인수전은 결국 지난 5월 23일 삼성SDS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일단락됐다. 매각대금은 1700억~1800억 원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S는 LG CNS에 비해 시너지 효과와 가격 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막판 이비카드 측에 단말기 수주 계약 등을 제안해 역전승을 거뒀다고 한다. 반면 LG CNS는 한국스마트카드와 이비카드의 대부분 사업이 중복돼 인수할 경우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마이너스 점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비카드 인수에 대해 삼성SDS 관계자는 “일단 본입찰이 끝나고 우리가 낙찰된 것은 맞지만 아직 협상해야 할 것이 남아 있어 뭐라 할 말이 없다. 마지막까지 도장을 찍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이비 관계자 역시 “인수에 관해서는 우리도 잘 알지 못한다”며 확답을 피했다. 어찌 됐건 재계에서는 삼성이 이비카드를 시작으로 또 다른 인수전에도 뛰어들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