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의 해운업 진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0년 거양해운을 설립하며 직접 철강재 운송에 나섰던 것. 당시에도 정부와 해운업계의 반발이 있었지만 포스코는 중국 인도 등 일부 지역 물량만 거양해운에 맡길 것을 약속하며 무마한 바 있다. 태생적으로 사업 영역의 한계를 가지고 있던 거양해운의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적자가 계속되자 포스코는 5년 만에 거양해운을 한진그룹에 매각하며 해운업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거양해운은 지난해 4월 한진해운에 편입됐다.
포스코가 뼈아픈 경험이 있는 해운업에 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4월 초 대우로지스틱스로부터 인수 요청을 받으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99년 옛 대우그룹 출신들이 자본금 300억 원을 들여 설립한 대우로지스틱스는 업계 10위권에 드는 중견 해운 업체다.
대우로지스틱스는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인 1조 7000억 원가량의 매출액을 올렸지만 148억 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됐다. 올해 들어서도 해상운임 하락 등 전반적인 업계 침체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대우로지스틱스는 지난 2005년부터 철강재 운송 일부를 담당하며 인연을 맺은 포스코 측에 ‘빠른 시일 내에 회사를 인수해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대우로지스틱스 관계자는 “인수 제안을 한 것은 맞다. 현재 포스코와 구체적인 부분들을 조율 중이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시너지 효과와 인수가격 등을 감안하면 포스코가 우리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우로지스틱스로부터 SOS 신호를 받은 포스코는 자체 검토를 통해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운송업체 마진까지 지불해야 하는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운송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특히 정준양 회장이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공식적으로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도 “실사 등을 통해 회사 사정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회사 경영진도 반대 여론이 이렇게 셀 줄은 몰랐을 것이다. 사실상 인수를 확정지었지만 정부와 업계 등의 여론 추이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 소식에 해운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1년에 7000억 원가량을 물류비로 사용하는 ‘VIP 고객’이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 해운업체 임원은 “철강재를 운송하는 전문 수송선사와 중소 선사는 물론 포스코 물량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몇몇 상위권 업체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업계에 큰 타격을 줄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도 “해운업계가 어려운 시기를 맞아 구조조정 등을 통해 위기 극복에 매진하고 있는 가운데 포스코가 해운업에 진출하면 중소 선사들은 모두 고사할 것이다. 포스코가 민영화되기는 했지만 그 특성상 자사 이익만을 위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에서는 세계 해운업 1위 국가인 일본을 예로 들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철광석 등 대량화물은 100% 자국의 전문 해운업체가 맡도록 돼 있다. 일본이 해운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전문기업 육성의 결과라는 것. 한국선주협회 측은 “포스코 입장에서는 원가절감을 할 수 있겠지만 해운업 발전에는 해가 될 것으로 본다. 대형 화주들이 자사물량을 운송하기 위해 업체들을 인수하면 전문기업들은 도태될 것이고 결국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의 해운 경쟁력은 떨어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해운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포스코는 해명에 나섰다. 지난 5월 27일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들과 만나 ‘인수와 관련해 결론이 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한 발 물러선 것. 포스코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서 성급하게 보도한 것이다. 인수를 공식적으로 추진한 적도 없고 철회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한국선주협회 측도 “포스코에 충분히 우리 입장을 전달했다. 조만간 다시 만나 합의점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포스코의 해운업 진출에 대해 ‘파장이 미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해운업체 경영을 위해 필수적인 노하우를 포스코가 갖추지 못했기 때문.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포스코가 거양해운 경영에 실패한 전례를 봐도 알 수 있다. 해운사업은 진입장벽이 그 어떤 분야보다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한 현행 해운법 24조에 ‘원유 제철원료 액화가스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화물의 화주 및 관계사가 해상화물운송업 등록을 신청할 경우 정책자문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포스코의 해운업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선주협회 등에서 걱정하고 있는 것은 포스코의 이번 인수 시도가 자칫 ‘연쇄 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약 포스코가 여러 장벽을 뛰어넘어 성공적으로 해운업에 안착하면 또 다른 대형 화주들도 그 뒤를 따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실제로 대우로지스틱스 인수 추진이 알려진 후 포스코 못지않은 우량고객인 한국전력의 해운업 진출설이 불거졌다. 이에 한국전력은 “아직 진행된 사실이 없다”며 부인하고 나섰지만 회사 안팎에서는 시기만 문제일 뿐 이미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한국전력은 화주의 해운업 진출에 제한을 둔 해운법 24조에 대한 해석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의뢰해 놓은 상태라고 전해졌다.
포스코의 해운업 진출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도 그리 곱지만은 않은 듯하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아직 포스코로부터 어떠한 의견도 받지 못했지만 현재의 해운업 상황을 고려하면 아직은 논의할 때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이러한 입장을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가 인수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에 대해 괘씸하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국토해양부 역시 4조 원대의 선박펀드를 조성하는 등 ‘해운업 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스코의 해운업 진출은 시기상조’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영화됐지만 아직은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포스코로서는 이러한 지적들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포스코 내부에서조차 ‘인도제철소 설립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굳이 대우로지스틱스를 매입해 미운털이 박힐 필요가 있느냐’라는 말이 점점 커지고 있어 이번 인수를 적극 추진했던 정준양 회장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듯하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