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가스공사 전경. | ||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월 1일 발표한 기업집단 자산순위에서 가스공사는 2008년보다 두 단계 오른 18위를 차지했다. 자산규모 22조 1000억 원으로 공기업 중에서는 5위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LNG의 96.6%를 수입하는 가스공사는 대량 수요처인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들과 29개 일반 도시가스 회사 등에 독점적으로 LNG를 공급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자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만도 1조 3000억 원가량에 달한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SK 등을 비롯한 몇몇 대기업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가스공사 민영화와 가스산업 독점 해제를 부르짖었던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가스공사 민영화 시도는 10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정부투자기관에서 출자기관으로 바뀌며 민영화 대상으로 분류된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부가 100% 가지고 있던 지분 일부를 한국전력공사 등에 매각하며 민영화의 첫 단추를 끼웠다. 그러나 사업부문 분리 등을 포함한 여러 차례의 민영화 시도는 공사 안팎의 반발이 심해 번번이 실패했다.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그동안 LNG 시장 진출을 호시탐탐 노려왔던 SK GS 포스코 등 대기업들 또한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포스코가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다. 포스코는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광양에 LNG 시설을 세우고 2005년부터 자체 소비물량을 직도입하고 있다. 포스코는 SK GS처럼 에너지 전문기업은 아니지만 지난 1997년부터 직도입을 요구하는 등 가스산업에 진출하려는 의지를 꾸준히 표명해왔다.
SK는 지주사인 ㈜SK가 지분 65%를 가지고 있는 K파워가 2006년부터 LNG를 직접 수입하고 있다. K파워는 지난해 국내 점유율 1.8%를 차지해 1.6%인 포스코보다 앞섰다. 점유율 96.6%인 가스공사를 제외하면 K 파워와 포스코가 유일한 LNG 수입업체임을 알 수 있다. GS는 계열사 중 GS칼텍스, GS EPS, GS파워 등 세 곳에서 LNG 직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2004년부터 추진해왔지만 여건이 충족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던 GS는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현재 보령에 자체 LNG 시설을 건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재계에서 SK GS 포스코를 LNG 직도입 허용의 수혜기업으로 꼽는 이유는 가스산업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요건들을 갖춰야 하는데 이 세 기업이 여기에 가장 근접하기 때문이다. LNG 인수기지(저장탱크) 건설 및 비용 조달능력, 국제 LNG 시장 또는 에너지 자원시장에 대한 경험, 국내 소매 시장 수요처 확보 등이 그것인데 국내 기업들 중 이를 충족시키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SK와 GS는 소매부문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고 포스코는 LNG 인수기지 건설 경험이 있다.
그동안 능력을 갖추고도 정부 규제에 막혀 극히 제한적으로 LNG를 수입해야만 했던 이들 기업들은 이제 그 장벽이 무너질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국내 가스 시장을 놓고 정면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한국가스공사지부(노조·위원장 황재도)의 한 관계자는 “이미 누가 참여할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추진되는 LNG 직도입은 재벌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민간 독과점의 출현으로 도시가스비가 인상돼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 3사의 가스 전담팀에 지식경제부 관료 출신들이 몸담고 있는 것을 거론하며 ‘전관예우’를 꼬집기도 한다.
중소 도시가스업체들도 발칵 뒤집혔다. 대기업들이 도매업에 본격 진출하면 안정적인 수요처를 유지하기 위해 중소 업체들을 인수·합병(M&A)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실제로 SK와 GS는 1990년대 말부터 도시가스업체들을 인수하기 시작해 각각 9개 사와 4개 사를 가지고 있다.
지방 도시가스업체의 한 관계자는 “삼천리 등 대형 업체들을 제외한 대부분이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단지 우리의 생존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해외 에너지를 확보하는 데 있어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공급자 위주의 국제 가스 시장에서 국내 대형업체들끼리 경쟁할 경우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가스공사 내부 역시 흉흉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부가 가스공사 민영화의 일환으로 LNG 직도입 허용 이외에 현재 보유하고 있는 가스공사 지분 26.86%를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2대주주인 한국전력공사가 가지고 있는 24.46%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의 노조 관계자는 “LNG를 놓고 재벌기업과 경쟁하는 것도 벅찬 상황에서 지분이 팔려 경영진이 바뀌면 대대적인 조직개편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걱정했다.
가스공사 지분이 시장에 나올 경우 SK GS 포스코 등은 물론 더 많은 대기업들이 이를 놓고 각축을 벌일 것이란 관측이다. LNG를 독점적으로 수입하던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가스공사의 안정적인 수익과 해외 자원개발 등에 대한 노하우 등은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대기업들로서는 특별한 준비 없이도 지분 매입을 통한 경영권 획득만으로 진입이 까다로운 국내 가스 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놓칠 수 없는 기회로 여길 듯싶다. 이와 관련, 재계에서는 삼성 롯데 등 굵직굵직한 기업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을 뿐 아니라 해외 자원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몇몇 업체들이 ‘연합전선’을 꾸릴 것이란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어 관심을 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