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유통업계에서는 최고의 백화점 입지 조건으로 단연 역세권을 꼽는다. 주요 백화점들이 지하철역과 터미널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지난해 개별 백화점 매출액 순위에서도 지하철 2호선 을지로역과 연결돼 있는 롯데백화점 명동점(1조 2490억 원)이 1위를 차지했고 3호선 고속터미널역과 강남터미널을 끼고 있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7633억 원)이 그 뒤를 이었다. 매출액 10위권 안에 드는 백화점들 역시 모두 역세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유통 빅3’가 강남터미널에 눈독들이고 있는 이유도 하루 4만 명이 오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동인구를 흡수해 매출액을 신장시키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또한 강남터미널 주변에 구매력이 높은 부유층이 거주하는 고급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는 점도 백화점업체들에겐 매력적이다.
반포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강남터미널 부지는 포화상태인 강남상권에서 거의 마지막 남은 개발지역”이라고 전했다. 현재 관할구청인 서초구청은 강남터미널을 주거·업무·쇼핑·문화 시설 등을 갖춘 서울시 최대의 교통복합단지로 개발하겠다는 밑그림을 그려놓은 상태다.
‘실탄’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금호아시아나도 강남터미널 지분만큼은 매각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의 한 관계자는 “우리로서도 내놓기가 정말 아까웠다. 유통업체는 물론, 많은 기업들이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 강남터미널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금호아시아나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관계자 역시 “지분 매각이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매물로 나올 경우 원하는 곳이 많아 파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유통 빅3’ 중 지금까지는 현대백화점이 가장 적극적인 모습이다. 현대백화점 측은 “아직 공식적으로 인수제안이 들어오지는 않았으나 검토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밝혔지만 재계에서는 이미 인수를 위한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근 현대백화점이 신규 백화점 설립과 대형마트 시장 진출보다는 복합쇼핑몰을 주력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에 강남터미널만 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강남터미널을 손에 넣을 경우 현대백화점은 신세계 롯데가 양분하고 있는 유통시장에서 적어도 서울 강남지역에서만큼은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개별 백화점 매출액 순위에서 현대백화점은 삼성동 무역센터점이 5928억 원으로 5위, 압구정점이 5496억 원으로 6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신세계백화점 강남점(2위)과 롯데백화점 잠실점(3위)에 뒤처졌다.
여기에 대형마트 등까지 포함하면 현대백화점은 롯데쇼핑과 신세계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유통 빅3’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2강 1약’의 판세인 셈이다. 현대백화점은 대형마트의 격전지로 꼽히는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에 대형쇼핑몰과 백화점 등을 짓고 있는 가운데 강남터미널까지 인수하면 이러한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신세계는 이미 터미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강남의 맹주 자리를 차지했고 인천터미널에 세운 인천점 역시 지난해 매출액 5283억 원을 올리며 매출액 순위 8위를 기록했다. 지방에 위치한 백화점 중에서는 롯데백화점 부산본점(6960억)에 이어 2위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에서는 신세계가 강남터미널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강남점 바로 옆에 경쟁사의 대형쇼핑몰이 입주하는 것도 부담일 것이란 관측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강남터미널 인수와 관련, 아직 논의된 것은 없다. 매각이 결정되면 그때 가서 검토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신세계 내부에서는 강남터미널을 인수해 대형 이마트를 세우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 점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강남터미널만큼 좋은 입지조건을 갖춘 곳이 드물 뿐 아니라 신세계 백화점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마트의 한 지점장은 “백화점과 가까이 있을 경우 매출은 더 올라간다.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롯데쇼핑의 경우 현대백화점과 신세계에 비해 다소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강남터미널 부지에서 불과 2㎞ 떨어진 서초동 롯데칠성 물류센터 부지에 이미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2롯데월드 건축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조 원이 소요되는 강남터미널 개발 사업에 뛰어들 여력이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말도 들린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언론 등에 우리가 인수 후보로 이름이 나오긴 했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재개발하기까지 많은 난관이 예상되는데 그런 문제는 제2롯데월드 하나면 족하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의 이름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듯하다. 현대백화점은 물론, 라이벌 신세계가 인수전에 뛰어들면 마냥 손을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 더군다나 ‘업계 1위’로 자부하는 롯데가 강남지역에서는 신세계는 물론 현대백화점에게조차 밀리고 있는 터라 강남터미널을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실탄 역시 ‘현금부자’ 롯데에게는 큰 장애가 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롯데쇼핑 관계자는 “왜 우리 이름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전혀 관심 없다”고 일축했다.
이처럼 ‘유통 빅3’는 강남터미널 지분 인수와 관련,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사가 인수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에 대해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는 곳도 있다. 경쟁을 부추겨 강남터미널 지분 가격을 높게 책정하려는 금호아시아나와 산업은행의 전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매각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3사 중 공식적인 제안을 받은 곳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지금은 ‘눈치싸움’ 단계인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분석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