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 그 앞에 파리 모습으로 분한 통신회사 직원이 날아와 쉴 새 없이 자사의 상품을 설명하며 ‘앵앵’댄다. 남성 주인공은 신문으로 그 파리를 여러 차례 내리친다. 이와 동시에 “복잡한 결합상품은 끝났다”는 음성이 나오면서 그 남성이 보던 <결합일보>엔 KT가 통합 출범 기념으로 선보인 결합상품 쿡(QOOK)을 설명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것은 KT가 지난 6월 1일 내놓은 TV 광고다.
KT는 “SK텔레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우리는 공정위 결정에 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KT 내부에서는 ‘SK텔레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며 불쾌해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이는 SK텔레콤이 파리인간 광고와 비슷한 시기에 내놓은 ‘T밴드’ 광고 역시 KT의 쿡을 비방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T밴드 광고를 보면 주인공 남성이 “얘들아 반값이다”라며 모자를 벗어 던져 집 건물을 반으로 자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갈라진 집의 모양과 색깔이 빨간 지붕에 하얀 벽 형태인 KT 쿡의 상징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이처럼 SK텔레콤과 KT 간 공방이 오가고 있는 가운데 양측의 앙금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상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SK 마크가 선명한 한 빌딩 창문 안쪽에 ‘Show(쇼)는 끝났다!!! KT’ ‘QOOK(쿡) QOOK(쿡) 밟아주마!!! KT’ ‘개고생 시켜주마!!! KT’ 등의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이 걸린 것이다. 현수막이 붙은 사무실은 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의 서울 영업을 담당하는 부서인 것으로 알려졌다. SK 측은 ‘내부용 구호’라며 급히 철거했지만 이를 접한 KT의 많은 직원들이 SK텔레콤을 비난했다는 후문이다.
SK텔레콤은 KT뿐 아니라 LG텔레콤이 지난 5월 27일부터 선보인 ‘탑(TOP) 요금제’ 광고에 대해서도 지난 6월 8일 공정위에 제소했다. LG텔레콤 광고는 한 고객이 이동통신사 고객센터에서 “무료통화가 너무 적다”고 항의하자 상담원이 “고객님, 그건 LG텔레콤으로 가셔야죠”라고 답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SK텔레콤은 광고에 나온 고객센터가 자사의 것과 매우 흡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고객이 불만을 털어놓는 요금제가 SK텔레콤에서 출시한 것이라고 보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SK텔레콤 측은 “객관적인 근거 없이 우리를 비방하고 있다. 광고를 중단하는 임시중지명령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LG텔레콤에서는 “SK텔레콤이 지나치게 확대해석을 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LG텔레콤 측은 “요금제의 특징을 재치 있게 전달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타사 직원임을 나타내는 요소가 없고 이미지 훼손이나 비방광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외부 전문가 검토를 마쳤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지난 5월 말에도 LG텔레콤의 3세대 이동통신 무선인터넷 ‘오즈’(OZ) 광고에 대해서 공정위에 시정조치를 요청한 바 있다. SK텔레콤은 “오즈 광고에서 ‘힘이 되는 3G(3세대 이동통신), 힘이 드는 3G’라고 한 문구는 비방광고며 LG텔레콤(월 6000원)과 SK텔레콤(월 2만 6000원)의 상품은 월간 데이터 이용한도가 다른데도 이를 비교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힘이 드는 3G’가 SK텔레콤의 요금제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LG텔레콤은 “광고에 SK텔레콤 대신 A 사로 표시했고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요금제를 부각한 광고인데 SK텔레콤이 문제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휴대폰 국제전화 ‘00700’ 서비스를 하는 SK텔링크도 ‘002’의 LG데이콤의 휴대폰 광고를 문제 삼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광고중단가처분신청을 내고 공정위에 시정조치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올 들어서 SK텔레콤과 LG텔레콤은 사사건건 부딪혔다. 지난 2월 LG텔레콤은 ‘SK텔레콤이 자사 고객을 대상으로 보조금 차등지급 등으로 불공정 경쟁을 하고 있다’며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신고하기도 했다. 방통위는 이 문제를 5월부터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통위가 보조금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지난 2007년 보조금 자율화 이후 처음이다. 또한 LG텔레콤의 탑 요금제도 출시할 때부터 SK텔레콤 가입자를 노린 것이라는 평을 들었다. LG텔레콤 역시 이 요금제를 선택한 사용자의 60%가 타사로부터 번호를 이동한 가입자라고 공개하며 SK텔레콤의 속을 긁었다.
이런 악연 때문인지 비방광고 논란과 관련, SK텔레콤 내부에서는 KT보다는 LG텔레콤을 향한 성토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KT와는 대화를 모색해보겠다는 뜻이 엿보이지만 ‘LG텔레콤과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LG텔레콤이) 후발 주자로서 비교 광고를 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것을 내보내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했다.
통신업계에서는 이러한 통신 3사의 광고대전을 통합 KT 출범에 따른 시장 주도권 싸움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업계 선두를 노리는 KT와, SK텔레콤-KT의 양강 구도 속에서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LG텔레콤이 점유율을 높이려 자극적인 광고를 내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SK텔레콤 역시 이에 밀리지 않기 위해 강경 대응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많은 업계 관계자들은 “통신시장의 과다 출혈경쟁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