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을 열었다. 왼쪽부터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 이 대통령, 진동수 금융위원장, 김종창 금감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하면서 계획경제의 필요성이 사라지자 1994년 EPB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재무부가 경제기획원을 흡수하면서 재경부로 덩치가 거친 후 모피아 독주시대가 열렸다. 전문성과 추진력에 자기들만의 인맥으로 똘똘 뭉쳐 각 부처 장관과 청와대 수석 등 정부 요직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모피아의 독주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저물었다.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재경부와 기획예산처, 금감위로 쪼개진 것이다.
이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간혹 모피아들이 전면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EPB 출신이 핵심 요직을 이어받았다. 강봉균 진념 전윤철 권오규 등 전 경제부총리와 변양균 윤대희 김대기 등 전 청와대 정책실장 및 경제수석, 비서관 등이 그들이다. 진보를 앞세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과거 보수정부와 노선을 달리했던 만큼 거시경제와 기획능력이 탁월한 EPB 출신들이 중용된 것이다.
지난해 10년 만에 보수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실 초기에는 모피아가 조금씩 앞으로 나서기는 했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따거’(형님)로 통하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이후 관가를 싹쓸이하더니 이제는 각종 금융기관 자리들까지 모피아 차지가 됐다. 심지어 국장급 이하 재경부 출신의 간부들이 금융업계로 진출하면서 ‘영 모피아’라는 말마저 생겨났다.
강만수 장관 시절만 해도 간간이 눈에 띄던 EPB 출신들은 윤증현 장관 취임 이후 자취를 감췄다. 재경부 차관과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내며 유일하게 정권 핵심 내 EPB 출신이었던 박병원 수석이 물러났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돌아오기는 했지만 경제에는 힘을 발휘하기 힘든 주미대사로 나갔다.
모피아들은 윤 장관을 필두로 윤진식 전 한국금융지주 회장이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았고, 진동수 수출입은행장은 금융위원장에 발탁됐다. 금융감독원장을 재무부 출신인 김종창 전 법무법인 광장 고문이 맡고 있던 점을 감안하면 국내 경제 정책의 헤드쿼터를 모피아 출신들이 차지하게 된 셈이다. 금융위기로 중장기적인 구상보다는 당장의 경제 문제 해결이 필요해졌고, 이에 따라 ‘땅에 발을 딛고 있는 모피아’가 강세를 보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각종 협회는 물론 금융기관에서도 모피아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올 2월에 새로 출범한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직을 맡은 황건호 전 증권협회장도 재무부 출신이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출범한 금융투자협회의 초대 회장직을 놓고 설왕설래가 많았지만 황 회장이 재무부 출신이라는 점을 살려 일찌감치 자리를 확보했다. 장건상 금융투자협회 부회장 역시 재무부 출신이다. 상호저축은행중앙회의 김석원 회장도 마찬가지.
신동규 은행연합회장은 모피아의 힘을 가장 잘 보여준 케이스다. 지난해 11월 은행연합회장직을 맡은 그는 지난 4월 있었던 한국은행법 개정 논란 당시 모피아라는 점을 잘 활용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한국은행에 시중은행 감독권을 부여하려고 방침을 정하고 관련 법률안을 소위에서 통과시켰다. 시중은행에는 비상이 걸렸고 신 회장만을 쳐다보는 상황이 벌어졌다. 신 회장은 재무부 출신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폈고, 기획재정부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이렇게 모피아들을 대상으로 한 설득이 힘을 발휘하면서 한은법 개정안은 결국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외에 윤용로 기업은행장과 김동수 수출입은행장 등 정부 산하 금융기관장들도 재무부 출신이다. 진병화 기술보증기금 이사장과 이승우 예금보험공사 사장, 진영욱 한국주택공사 사장 등 상당수 금융 관련 공기업과 유관기관 사장 및 주요 임원 자리를 재무부 출신이 장악했다. 이처럼 모피아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통상 임기가 끝난 한국은행 부총재보 출신이 맡던 주택금융공사 부사장 자리도 이들에게 넘어갔다. 전적으로 이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지난 4월 임기가 끝난 한은 부총재보 두 명 중 한 명은 자리를 찾지 못했다.
재무부 출신 중 아예 3급, 4급에서 관직을 그만두고 금융업계로 진출, 영향력을 키워 ‘영 모피아’로 불리는 이들도 생겨났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김범석 더커자산운용 사장이다. 외환위기 이후 IT붐이 일 때 관복을 벗고 증권업계에 뛰어들어 키움증권 초대 사장과 동원투신운용, 한국투신운용 사장을 거쳤다. 방영민 삼성증권 전무도 대표 격이다. 방 전무는 부이사관(3급)일 때 재무부를 떠나 삼성증권 전략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중장기전략 등을 맡다가 최근에는 법인사업부 등을 총괄하고 있다. 전병조 NH투자증권 전무도 부이사관 때 관을 떠났다.
이형승 IBK증권 사장과 이현승 SK증권 사장도 비슷한 케이스다. 이형승 사장은 서기관(4급) 시절 증권사로 자리를 옮겨 삼성증권 이사, CJ그룹 경영연구소장, IBK투자증권 부사장 등을 거쳐 사장에 임명됐다. 이현승 사장 역시 서기관 때 글로벌컨설팅업체 AT커니로 옮긴 뒤 메릴린치 기업 및 국제금융담당 이사, GE에너지코리아 사장을 거쳐 지난해 국내 증권업계에서 최연소로 증권사 사장을 맡았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모피아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면서 재무부 출신들이 여러 금융기관 등의 수장을 맡는 일이 많다”면서 “지난번 한은법 파동 당시에도 드러났듯이 모피아의 힘은 여전하다. (관료 출신이기에)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도 이어갈 수 있고, 비록 지금은 금융정책국이 금융위원회에 넘어갔지만 금융 분야에 영향력이 아직 상당한 데다 탁월한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모피아의 약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금융업계의 한 인사는 “재무부 출신이 모피아라고 불린 것은 마피아처럼 자기들끼리 강력한 연대로 맺어져서 주요 관직과 산하기관장을 독식하는 ‘회전문 인사’의 폐해를 일으켰기 때문”이라면서 “이 때문에 외환위기 당시 위험경보가 작동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무부가 분해됐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최근 모피아의 약진이 두드러지는데 과거와 같은 폐해를 다시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없는지 경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