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신세계와 부영 총수일가의 자존심 싸움이 벌어진 무대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고급 주택가다. 이곳엔 이번 갈등의 주역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이중근 부영 회장을 비롯해 국내 유수 재벌가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엔 국토해양부 발표 기준 국내 최고가 단독주택인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일가의 이태원동 자택이 위치해 있다.
한남동 7××-41에 있는 이중근 회장 자택에 대해 부영 측은 “한강뿐만 아니라 남산 한남대교 등이 다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은 곳”이라 설명한다. 이중근 회장은 이곳 땅을 지난 1994년에 사들인 후 2층 집을 지어 1995년부터 살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부터 이 회장 집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 있는 한남동 7××-8외 2필지에서 신축공사가 시작됐다. 이 땅의 주인이 바로 이명희 회장 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다.
문제는 이중근 회장 집이 더 높은 곳에서 정 상무 집터를 내려다보게끔 돼 있지만 현재 진행되는 건축물 골격을 볼 때 이 회장 집에서 한강으로 향하는 시야가 가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정 상무 명의로 된 한남동 신축공사 현장은 토지 면적만 1759㎡(약 533평)로 위쪽 이중근 회장 집 면적 709㎡(약 215평)의 두 배를 뛰어넘는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이 집이 완공되면 현재 서울 청담동에 거주 중인 정 상무를 불러들여 살게 할 것이라고 한다.
이중근 회장 측이 이명희 회장 측을 상대로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을 낸 것은 지난 2일의 일이다. 첫 삽을 뜬지 9개월 만이다. 부영 측은 “공사 시작 때부터 현장 관계자들에게 (이중근 회장 집의) 조망권 침해에 관한 의사전달을 했다. 될 수 있으면 원만하게 해결하려 했으나 우리 입장이 전혀 반영되는 것 같지 않아 법정으로 가게 됐다”고 밝힌다.
그러나 신세계 측은 “해당관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다 받은 상태라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미리부터 인근 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사를 시작했으며 높이 제한도 어기지 않았기 때문에 법정으로 가더라도 자신 있다는 설명이다. 부영 측의 사전접촉 주장에 대해서도 신세계 측은 “딱 한 번 부영 측 인사가 찾아와서 설계도면을 보여 달라고 한 것이 전부다. (부영 측이) 한동안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벌가 소유의 고급주택들이 늘어서 있는 한남동 일대에서 신세계 총수 일가의 신축공사가 주목받는 것은 비단 부영 측과의 갈등 때문만은 아니다. 이 공사만 잘 마무리되면 이명희 회장 일가는 인근 이태원동에 위치한 오빠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국내 최고가 저택에 필적할 규모의 가족타운을 형성하게 된다. 우선 정 상무 명의로 된 공사현장 인근인 한남동 7××-29엔 정 상무 명의의 주택이 또 한 채 있다. 2층 단독주택인 이곳의 대지면적은 1140㎡(약 345평). 정 상무 명의로 된 한남동 땅 면적만 총 2899㎡(약 878평)에 이르는 셈이다.
게다가 정 상무 보유 주택과 맞붙은 한남동 7××-61과 7××-21은 모두 이명희 회장 소유다. 종전부터 보유해온 7××-61 소재 2층 주택(대지면적 1527㎡, 약 462평)과 더불어 지난 2002년 2월 사들인 7××-21 소재 2층 주택(대지면적 1191㎡, 약 361평)을 합하면 한남동 일대 이 회장 명의 토지는 총 2718㎡(약 823평)이 된다. 정 상무 오빠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명의의 2층 주택도 인근 한남동 7××-32(대지면적 559㎡, 약 170평)에 있다.
이중근 회장의 소송을 불러온 이번 공사가 끝나면 이명희 회장 일가는 한남동 일대에 대지면적만 총 6176㎡(약 1871평)에 이르는 거대 가족타운을 형성하게 되는 셈이다. 또한 정 상무는 모친 이명희 회장보다 더 넓은 집터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지형상 모친이나 오빠의 자택보다 훨씬 더 좋은 한강 조망권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희 회장 일가가 범 삼성가로는 두 번째로 이곳에 가족타운을 형성하게 된 배경에 또 다른 범 삼성가와의 부동산 거래가 있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정유경 상무가 현재 공사 중인 한남동 7××-8 일대 토지를 사들인 것은 지난 2007년 7월이다. 이전까지 땅 주인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 맏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남편인 조운해 전 고려병원장과 그 아들들이었다.
어쨌거나 신세계 측의 신축공사가 마무리되면 이중근 회장 자택은 이명희 회장과 정용진-유경 자매 명의 주택들에 마치 포위되듯 둘러싸이게 된다. 부영 측은 “원만하게 해결된다면 공사를 굳이 중단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지만 신세계 측은 “아무런 문제가 없기에 전혀 그쪽(부영)과 타협할 이유가 없다”며 평행선을 긋고 있다.
일각에선 지난 2005년 이태원동 자택 건축 당시 이건희 전 회장도 소음과 조망권 문제로 옆집 주인 신춘호 농심 회장 일가와 갈등을 빚다가 삼성 측이 나서 합의해준 전례를 거론하기도 한다. 현재 “법대로 하자”는 입장의 신세계가 부영과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신세계 타운’ 건립의 명암이 결정될 듯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