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와 관련, 관가나 언론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말이 있다면 ‘출구전략’이다. ‘출구전략을 시작해야 한다’ ‘시작은 아니더라도 준비는 해야 한다’ ‘지금은 출구전략을 쓸 때가 전혀 아니다’ 등등 시기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하지만 실제 출구전략이 언제 시작될 것인지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아직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출구전략이라는 것은 간단히 이야기하면 시장에 많이 풀려 있는 자금을 다시 끌어 모으는 ‘유동성 회수정책’을 의미한다. 금융위기 상황에서 기업과 은행, 가계의 자금줄이 마르지 않도록 정부는 기준금리를 내리거나 세금 인하와 재정 확대 등을 통해 시중에 자금을 쏟아냈다. 문제는 이렇게 쏟아진 자금을 제때 회수하지 않으면 경기가 회복기로 돌아선 상태에서 인플레이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증권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유동성 회수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이 때문이다.
출구전략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1993년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보스니아 내전 개입 때 사용한 기록이 처음으로 남아 있다. 당시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상원 청문회에서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를 공습하려면 미군이 발칸반도 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후 미국에선 성공적인 철수 전략의 의미로 출구전략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경제에서의 출구전략도 이와 마찬가지다. 전쟁(금융위기)에 개입(확장적 재정정책)해서 전투를 마쳤는데(경제회복) 병사를 철수시키는 출구전략(유동성 회수)에 실패하면 커다란 피해를 입는 상황(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 이성태 한은총재, 윤증현 재정부 장관 | ||
가장 먼저 출구전략을 이야기했던 것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다. 이 총재는 지난 6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생산 활동이 상당히 호전되고 내수 쪽에서도 부진이 완화되면서 경기 하강세는 거의 끝났다고 생각된다”며 ‘바닥론’을 내놓았다. 이어 그는 “단기간에 소비자물가가 큰 폭으로 오르지는 않겠지만 최근 원유·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공공요금도 오르고 있다”면서 “2~3개월 전에 비해 물가가 불안정해졌다”고 덧붙여 출구전략 적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다음날 한국은행 창립기념식 축사에서도 “확장적 통화 및 재정정책이 중장기적으로 우리경제에 부담 주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바로 그날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기의 하강속도가 둔화된 것은 맞지만 아직 경기의 하강은 지속되고 있다. 2분기(4∼6월)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플러스가 되더라도 여전히 전년 동기대비 성장률은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경기가 회복됐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경기회복은) 사람들의 착시현상일 뿐이다. 적극적 재정·금융정책에 변화를 줄 시기가 아니다”는 말로 출구전략에 제동을 걸었다.
이후 잠잠하던 출구전략 논란은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환경 변화와 정책방향’이라는 보고서에서 “경기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재정정책을 적절하게 조정하지 못할 경우, 그 부작용은 경제 전반에 걸쳐 보다 심대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향후 세출 구조조정과 함께 다양한 세수증대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재정정책 ‘정상화’를 요구하며 다시 부각됐다. KDI는 특히 “현재의 목표금리(2.0%)는 지극히 부양적인 수준”이라며 “최근 단기유동성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현상은 금융시장 참여자가 현재의 금리를 충분히 낮은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금리 인상을 주문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