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캠페인 ‘산업혁신운동 3.0’의 출범을 앞두고 기업들에게 기금 출연을 종용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 방미 때 수행경제인과의 조찬 간담회. 사진제공=청와대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18일 ‘산업혁신운동 3.0’ 발대식을 개최한다. 취지는 산업혁신이 1970년대 공장새마을운동(1.0)부터 시작됐고, 이명박 정부 시절 동반성장운동을 통해 대기업과 1차 협력사간 성과공유(2.0)가 자리 잡은 만큼, 이제는 이를 2, 3차 협력사 즉 ‘뿌리 기업’까지 확대(3.0)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대한상공회의소에 중앙추진본부 설치하고, 각 지역상공회의소를 통해 대기업의 2, 3차 협력사뿐만 아니라 개별 영세 사업장도 신청을 받아 심사 후 사업장 환경정비, 경영 및 기술 지원을 해나갈 계획이다. 지원되는 영세업체는 2013년 1000개, 2014년 1500개, 2015년 2000개, 2016년 2500개, 2017년 3000개로 5년간 1만 개에 이른다.
문제는 재원이다. 과거 동반성장 사례에 비춰 1개 업체당 2000만 원씩 소요된다고 쳐도, 5년간 최소 2000억 원 정도가 소요되는 캠페인이다. 정부는 이를 동반성장운동의 기금관리 목적으로 설립된 법적기구인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의 기금을 활용할 계획이다.
이 재단은 이명박 정부가 지난 2010년 동반성장추진을 대책을 발표하고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대기업들로부터 본격적인 기금 출연을 받아왔다. 현재까지 삼성전자 1000억 원, 포스코 2100억 원 등 6000억 원가량 출연 협약이 체결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공기업과 중견기업들도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당시 이명박 정부가 대기업들에게 동반성장을 명분으로 내세워 기금 출연을 거의 노골적으로 요구했다”면서 “하지만 그때 협약을 체결한 약정금액이 실제로 모두 출연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단 측은 공식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지만, 약정총액 6000억여 원 가운데 30% 정도만이 출연됐고, 이마저도 그동안 각종 사업에 쓰인 나머지 기금 잔고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협약 체결 당시에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출연을 약속해놓고, 정권이 바뀌자 슬그머니 유야무야되기를 바라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고 추정하기에 충분한 정황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까지 ‘산업혁신 3.0’을 내걸어 동반성장의 불씨를 살려가려 의욕을 보이는 데다, 그 재원이 불충분할 경우 정부의 추가 출연 압박이 들어올 게 분명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실 정부쪽에서 각 지역별로 기금 출연 할당액을 정해놓고 대기업들에게 기준액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사업에 그 재원을 기업들에게 떠미는 것은 정부는 생색만 내겠다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반면 정부 주변에선 ‘산업혁신 3.0’의 취지를 볼 때 그 성과가 결국에는 대기업들에게 돌아가는 것인데, 그 정도의 기금 출연은 당연히 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대기업들과 협력사들 간 동반성장운동의 기반은 성과공유제다. 이는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가 공동으로 원가절감이나 기술개발을 일궈내고 그 성과도 서로 공유하는 개념으로, 단순히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중소기업 및 협력사와 나눈다는 취지의 이익공유제와는 다르다. 결국 이번 ‘산업혁신 3.0’을 통해 2, 3차 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면 그 성과가 대기업에게도 배분돼 더욱 향상된 완성품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이제는 동반성장운동을 대기업들이 협력사들에 베푸는 시혜 차원에서 바라보던 시대는 지났다”면서 “대기업으로 보면 동반성장의 성과공유제는 제품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자로 봐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더구나 동반성장 기금을 출연한 기업에게는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출연금의 7%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법인세에서 감면해주는 세액공제혜택이 부여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동반성장 기금 출연 종용에 대한 대기업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슈퍼 갑’인 정부와 철저하게 ‘을’일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그동안 부담해야 했던 ‘준조세’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또 다른 경제단체 관계자는 “이제는 대기업들에게 일률적으로 기금 출연을 강제하기보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며 “현재 각 대기업별로 수천억 원 규모의 동반성장펀드가 조성돼 자율적으로 협력사들과의 동반성장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기에 ‘산업혁신 3.0’은 순수 정부 차원의 지원 사업이어야만 명분이 선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기업들이 당장에는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산업혁신 3.0’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취하겠지만, 이후 진행 과정에서 정부와 대기업들 간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웅채 언론인
‘이번엔 누가 빠졌나’ 촉각
오는 27~30일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수행할 경제사절단 구성이 청와대와 대한상공회의소 간에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재계에선 ‘어느 기업이 명단에 들어가느냐’보다 ‘어느 기업이 제외됐느냐’에 관심이 많다. 지난 5월 방미 경제사절단에서 제외됐던 CJ그룹이 이후 비자금 수사로 경제 사정의 첫 대상이 됐던 만큼, 이번 방중 경제사절단에서 빠져 있는 대기업이 엉뚱하게 주목받는 것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기자들이나 외부에서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것이 ‘누가 제외됐느냐’는 것이지만 우린 청와대가 발표할 때까지 함구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편 상공회의소는 방중 경제사절단에 넣어달라는 중소기업들의 민원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사업 진출했거나 모색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사절단에 들어가면 현지 중국 공무원들에게는 격이 다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국가훈장’이나 다름없다고 여기는 까닭에서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