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저질 영화 같은 얘기가 현실이 됐다. 날벼락을 맞듯, 성실하던 여대생이 뼈가 조각이 나고 머리에 납 탄이 일곱 발이 박힌 채 잔인하게 살해되어 야산기슭에 버려졌다. 사모님은 운전기사인 그녀의 남편이 죄를 뒤집어 써주면 50억 원을 주겠다고 제시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 정도의 금액이면 영혼이라도 팔아버릴 거액이었다. 살인 심부름을 한 운전기사의 말 한마디가 사모님의 운명을 바꾸고 아이를 키우는 운전기사의 아내도 거액으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순간 난 그들의 상담자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녀가 물었다. 변호사인 나는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사회를 소망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혼자 키워야 하는 그녀가 돈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남편은 사형당하고 회장 사모님은 무죄가 되어 세상을 활보하는 걸 봐도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본 부자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줄 듯 말하면서 이용만 하고 안 주는 사람입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편 방송 화면캡쳐.
“맞아요. 사모님 부부는 남에게 줄 돈을 주지 않고 부자가 된 사람이에요. 남편 죽고 돈도 못 받으면 평생 제가 얼마나 한이 되겠어요.”
그녀의 얼굴에 굳은 결심이 서렸다. 그녀는 회장 사모님이 붙여주는 변호사를 거절하고 나를 선택했다. 그녀는 어리석은 남편을 설득하고 그녀 자신도 목숨을 걸고 법정에 나와 진실을 토해냈다. 세상에서는 모든 공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돌린다. 그러나 그녀가 아니었으면 누구도 회장 사모님을 유죄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증언 후 내게 이렇게 예언을 했다.
“사모님은 징역형을 받아도 절대로 감옥에 있을 사람이 아니에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빠져나올 사람이에요. 그리고 나오면 나를 꼭 죽일 겁니다.”
그녀의 말은 족집게같이 들어맞았다. 얼마 전 TV 시사프로그램에서 회의실까지 갖춘 하루 200만 원짜리 호화 병실에서 생활하는 사모님의 모습을 봤다. 10여 차례 형집행정지와 연장을 4년 이상 계속하면서 외출·외박까지 한 그녀의 무기징역은 의미 없는 껍데기 선고였다. 서민들은 병으로 죽어가도 형집행정지결정을 해주지 않았다. 방송은 그녀의 꾀병과 가짜 진단서를 폭로했다.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는 “감옥에 있는 사람이라 측은지심에서 그랬다”고 말한 보도를 봤다. 의사는 ‘거동할 수 없는 상태’라는 소견을 냈다. 멀쩡한 재벌 회장들이 감옥에만 가면 갑자기 죽기 직전의 환자로 둔갑을 했다. 링거 줄을 매달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 파출부를 하던 살인범의 아내도 돈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유명 병원의 권위 있는 의사나 검사들은 너무 동정심이 많은 것 같다. ‘사모님법’이라도 빨리 제정해 의사와 검사의 부자들에 대한 동정(?)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사위와 불륜 오해 조카에 청부살해 지시
지난 2002년 한 중견기업 회장 부인 윤 아무개 씨는 판사 사위 김 아무개 씨의 외도를 의심했다. 윤 씨가 사위 김 씨의 불륜 상대로 오해한 이는 김 씨와 이종사촌간인 여대생 하 아무개 씨. 윤 씨는 있지도 않은 이들의 불륜 사실을 확인하려다 실패하자 급기야 조카인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청부살해를 지시했다.
결국 며칠 뒤 경기도 하남에서 머리와 얼굴에 공기총을 맞은 하 씨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이들의 범행은 들통 나 2004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 씨의 회유와 위증 고발 등 곡절을 거쳐 형이 확정된 것은 2010년. 이후 사건은 세인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지난 5월 25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윤 씨가 2007년부터 지금껏 허위진단서를 이용해 형집행정지를 받아 대학병원 호화 병실에서 생활해온 사실이 드러나 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지난 5월 21일 윤 씨의 형집행정지를 취소, 구치소에 재수감한 검찰은 지난 13일엔 관련 병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허위·과장 진단서를 발급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