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침 꼴깍 대한유화공업 전경. 대한유화는 현금보유고뿐 아니라 부동산 자산도 매력적이라는 평가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H&Q 펀드가 이번에 내놓은 대한유화 주식은 총 174만 2404주(지분율 21.25%)다. 이는 지난 2007년 1월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캠코)로부터 사들인 전량에 해당하는 것. H&Q 펀드는 골드만삭스를 매각 주간사로 선정, 지난 8월 초부터 예비입찰 신청서를 받기 시작했고 그 결과 SK에너지 LG화학 호남석유화학 등 6개사가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엔 외국계 자본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재계서열 3·4·5위 대재벌들이 지분 매입에 뛰어든 것은 대한유화가 일반인들에겐 낯설지만 업계에서 ‘알짜배기’로 정평이 난 곳이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지난 1970년 설립된 대한유화는 19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4년여 만에 ‘졸업’하고 그 이후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뒀다. 2005년 매출액 1조 원을 넘겼고 그 규모는 지난해 1조 7000억 원가량으로 늘어났다. 올해 상반기에는 창사 이래 최대인 1100억 원가량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재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현금보유고뿐 아니라 대한유화가 가지고 있는 부동산도 매력적이라는 평가다. 대한유화는 본사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옥인동 일대와 석유화학 시설이 들어선 경남 울산 등에 토지 및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울산광역시 온산읍에 있는 330만㎡(100만 평)가량의 부지는 진작부터 그 활용도를 인정받아왔던 곳이기도 하다. 절반 이상이 미개발 상태에 놓여 있어 추가 공장 입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이 공장부지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대한유화의 가치는 더욱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이번 지분 인수전이 ‘1강 2중’의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업계 1위인 SK에너지의 우세 속에 그 뒤를 LG화학과 호남석유화학이 뒤쫓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에너지가 오래 전부터 대한유화에 눈독을 들여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그만큼 준비도 잘 돼 있을 것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SK에너지 측은 “일단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상태”라며 말을 아꼈다.
SK에너지에 비해 다소 열세인 것으로 평가받는 LG화학과 호남석유화학 역시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기세다. 대한유화를 손에 넣을 경우 단번에 업계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올해 하반기 석유화학 업종 전망이 어둡다는 점도 안정적인 연료와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대한유화 지분 인수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LG와 롯데는 그룹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석유화학부문 확대를 호시탐탐 모색해 온 ‘현금 부자’ 롯데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대한유화 지분 인수전의 또 다른 변수는 이순규 대한유화 회장이 가지고 있는 경영권의 향배다. 그동안 이 회장은 개인 지분이 1.83%에 불과했지만 H&Q 펀드 보유분을 포함한 60%가량의 우호지분으로 회사를 장악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H&Q 펀드가 대기업 계열사에 팔리면 우호지분이 39.75%로 낮아져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잠재적 경쟁자로도 볼 수 있는 2대주주를 맞게 된다. 회사 안팎에서 경영권 위협을 받게 되는 셈이다.
대한유화 측은 “대주주 일가의 지분 매각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일축하고 있지만 경영권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분위기다. 우선 최대한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팔려는 H&Q 펀드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기 위해 이 회장 일가 설득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이 단지 지분 확보만을 위해 예비 입찰에 참여했을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H&Q 펀드와 모종의 합의를 했거나 일단 지분을 사들인 후에 경영권 다툼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영권까지 매물로 나오면 대한유화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는 본입찰 도중에도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곳에 추가 참여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이번 매각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져 당초 대한유화 경영권을 원했던 또 다른 대기업들이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예비입찰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한 석유화학업체의 관계자는 “H&Q 펀드를 비롯해 더 많은 지분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뒤늦게라도 입찰에 뛰어든다는 방침을 세웠다”라고 털어놨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