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이 주세요.” “처음처럼요.”
술집이나 식당에서 자기가 선호하는 소주의 브랜드를 콕 집어서 주문하는 것이 요즘의 트렌드다. 이는 소주업계 1위(전국 시장점유율 49.8%)인 진로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예전까지 서울·수도권 지역에서는 ‘소주하면 진로’가 공식처럼 여겨지던 호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업계 2위(전국 시장점유율 12.5%) 롯데주류 ‘처음처럼’의 추격은 계속되고 있다.
롯데주류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쿨’을 출시하며 17도 이하 저도주 시장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8월 25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공식적으로 선보인 신제품 ‘쿨’은 롯데주류가 올해 초 두산주류를 인수한 뒤 내놓은 첫 작품이기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쿨’은 ‘처음처럼’(19.5도, 출고가격 869원)보다 알코올도수가 2.7도 낮고 출고가도 848원으로 낮아져 순한 소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지난 26일 처음 출시되어 현재 서울 및 수도권과 강원 일부 지역에 유통 중”이라며 “‘쿨’을 맛 본 소비자의 90% 정도가 소주 맛에 만족감을 나타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기 위해 ‘쿨’이라는 명칭을 붙였으며 라벨이나 뚜껑 등 외관도 신경을 썼다”며 “다양한 술을 즐기는 젊은 세대들이 가볍게 즐기는 소주의 대명사로 자리매김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롯데주류의 공세에 ‘주류지존’ 진로 측은 “저도주의 소주시장 점유율이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롯데가 무리한 사업에 뛰어들었다”며 “알코올도수가 18도 밑으로 내려가면 맹맹한 맛이 날 뿐”이라고 주장했다. 진로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호기심에 16도 소주를 찾겠지만 결국엔 제이(J, 18.5도) 같은 18도 이상의 소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참이슬, 참이슬 후레시, 제이’로 이어지는 진로 소주 이미지를 계속 유지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쿨’과 직접적으로 저도주 경쟁을 펼쳐야 하는 부산·경남지역의 소주 업체들도 속이야 어떻든 일단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부산·경남지역에 2006년부터 저도주 ‘좋은데이’를 출시, 판매하고 있는 무학 측은 “롯데가 부산지역을 연고로 하는 롯데 자이언츠를 통해 부산 소주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지각변동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학 관계자는 “3년 전부터 이미 부산·경남의 젊은 층에게 ‘좋은데이’가 순한 소주로 인식되어 있어 ‘쿨’ 출시에 맞서 어떠한 판촉행사도 계획하지 않고 있다”면서 “현재 월 360만 병 이상 팔리고 있는 만큼 ‘쿨’의 대대적인 물량 공세도 막아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좋은데이’는 부산·경남지역에서 10% 정도의 점유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좋은데이’와 경쟁해온 대선주조의 ‘봄봄’은 월 16만 병이 팔리는 데 그쳐 고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대선주조 관계자는 “‘쿨’이 출시됐지만 시민들에게 부산의 대표 소주가 ‘시원(C1), 봄봄’임을 계속 알리는 기존의 마케팅 방법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대선은 ‘봄봄’ 라벨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해운대>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대선주조는 부산지역 소주시장에서 74.5%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어 2위인 무학(16.5%)을 큰 격차로 따돌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롯데주류가 모그룹의 연고지인 부산·경남지역 선점을 노리고 저도주 시장에 뛰어든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롯데주류가 ‘처음처럼’을 인수한 직후인 지난 2월 롯데야구단의 홈구장 부산사직야구장에서는 광고판 교체 공사가 있었는데 경남지역 소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무학의 ‘좋은데이’가 철거되고 ‘처음처럼’이 설치되기도 했다. 이처럼 롯데주류는 대대적인 광고와 판촉을 위해 부산지역에만 200억 원에 달하는 비용을 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7월 부산지역 소주 점유율은 2.1%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홈그라운드’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고전하자 롯데주류는 부산·경남지역 젊은 층에게 인기가 있는 저도주 시장부터 공략, 궁극적으로는 입맛을 ‘처음처럼’으로 바꾸는 전략을 세웠다는 것이다. 롯데가 뛰어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17도 이하 저도주는 전국에서 부산·경남지역에서만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에 대해 롯데주류 측은 “점점 순한 소주를 찾는 젊은 층의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저도주를 출시한 것이지 특정 지역을 노리지 않았다”며 “수도권과 강원 일부 지역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판매망을 넓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태공들 J에 낚였네~
최근 ‘저도주 소주 전쟁’이 시작된 상황에서 낚시꾼들 사이에 진로의 저도주인 ‘제이’(J)가 입소문을 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독한 소주를 즐길 것 같은 낚시꾼들이 의외로 ‘제이’를 더 선호하고 있다는 것. 이는 소주의 맛을 떠나서 ‘제이’의 병에 있는 영문 이니셜 ‘J’ 디자인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낚시 바늘의 모양과 비슷해서 ‘낚시꾼들의 술’로 통한다는 얘기다.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제이’가 월척의 꿈을 이루어준다는 속설까지 퍼지고 있다. 낚시 동호회 회원인 김 아무개 씨(35)는 “친구들 사이에서 ‘제이’ 관련 소문을 듣고 나도 가끔씩 대어를 낚기 위해 한 병씩 마시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대어를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진로 관계자는 “우리도 그런 소문을 최근에 들었다”며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낚시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