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 ||
구광모 씨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영학석사(MBA) 2년 과정을 마치고 조만간 돌아올 것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재계에선 구광모 씨의 경영수업 돌입을 예측해 왔다. 일부 언론에선 LG그룹 내부 관계자의 말을 통해 ‘구광모 씨가 올 가을 LG그룹에 복귀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구광모 씨는 지난 2007년 휴직계를 내고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LG전자 재경부서에서 과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조만간 복귀가 이뤄진다면 이미 1년 근무경험이 있는 LG전자행이 일단 유력해 보이나 다른 주력 계열사 배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구광모 씨 복귀설을 접하는 LG그룹 측은 다소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그룹 관계자는 “구광모 씨가 아직 귀국을 하지 않은 상태”라고 밝힌다. 국내로 언제 돌아올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 미국에 머물고 있는 구광모 씨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커진 것은 재계 서열 1, 2위 삼성과 현대차의 최근 후계구도 가속화 움직임 때문이다.
그러나 LG그룹 측은 “(구광모 씨를) 이재용 전무나 정의선 부회장과 단순 비교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구광모 씨가 지난 2004년 구본무 회장의 양자가 되면서 ‘구인회 창업주→구자경 명예회장→구본무 회장’ 순으로 이어진 장자 승계를 4대째 이어갈 것이란 기대를 낳았지만 아직까지 LG가에선 후계구도를 공식화하지 않은 상태다. 구광모 씨가 아직 31세에 불과한 데다 경영 이력도 거의 없는 터라 이미 최일선에서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재용 정의선 등 ‘황태자’들과의 직접비교에 LG 측이 부담을 갖는 것이다.
구광모 씨가 이재용 전무나 정의선 부회장 같은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밑바닥 경험 못지않게 뒤에서 경영수업을 맡아줄 후견인 역시 필요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선 구본무 회장의 신진 측근으로 부상한 조준호 ㈜LG 대표이사 부사장을 주목해왔다. 그러나 경영현장 수업을 위해 구광모 씨가 지주회사보다는 LG전자나 LG화학 같은 곳에 배치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계열사 임원 중 한 사람이 나설 것으로 보는 시각도 늘어났다.
후계구도 안정을 위해 구광모 씨의 복귀일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지분 확보다. 현재 그룹 지주사 ㈜LG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10.60%의 구본무 회장이다. 그 뒤를 구 회장의 셋째 동생 구본준 LG상사 부회장(7.58%)과 구 회장 바로 아래 동생이자 구광모 씨 생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5.01%)이 잇고 있다. 지분율 4.67%의 구광모 씨는 이들 다음인 4대 주주다.
▲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열린 ‘CES 2009’ 전시장 내 LG전자 부스. | ||
구광모 씨가 ㈜LG 지분 매입을 하지 않은 지난 6개월간 LG가 다른 인사들의 지주사 지분율에도 변동이 없었다.
구광모 씨의 LG 복귀에 맞춰 총수일가 내 지분이동이 일어날지 관심을 끈다. 때마침 실탄은 어느 정도 장착돼 있다. 지난 8월 계열사 LG이노텍 대주주 명부에 올라있던 구본무-광모 부자를 비롯한 총수일가 인사들이 보유 지분 전량을 처분해 목돈을 손에 쥔 것이다.
LG이노텍은 지난 7월 LG마이크론과의 합병을 통해 대형 전자부품업체로 거듭난 곳이다. 지난해부터 제기돼온 합병설에 힘입은 고공행진으로 올 초 3만~4만 원대였던 주가가 지난 8월 LG 총수일가의 지분 매각 당시 10만 원을 훌쩍 뛰어넘어 총수일가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줬다. LG전자가 이미 경영권 유지에 필요한 LG이노텍 지분(50.64%)을 갖고 있기에 총수일가 인사들이 지분 매각을 통해 거액 차익을 실현할 것으로 예상돼 온 바 있다.
구광모 씨는 지난 8월 17일 LG이노텍 지분 전량(4만 2000주) 처분을 통해 주식 매각대금 50억 원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LG 지분 1%를 사는 데 1400억 원가량이 필요한 점을 감안하면 50억 원이 구광모 씨의 지주사 지분율을 크게 변화시킬 금액은 아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구 회장을 비롯한 총수일가의 암묵적 지원이 있어야 급격한 지분율 증가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구광모 씨가 이재용 전무나 정의선 부회장 같은 공식 황태자로 등극할 수 있을지는 ㈜LG 2대주주인 구본준 부회장의 지분율(7.58%)을 넘어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06년 12월 이후로 구 부회장의 지분율엔 변동이 없다.
구광모 씨의 ㈜LG 지분율 구 부회장 지분율을 뛰어넘게끔 만드는 일은 쉽게 결정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룹 내 일정 지지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구 부회장이 구광모 씨에게 2대주주 자리를 내주는 것은 곧 LG그룹 지배구조의 거대한 지각변동을 뜻하는 까닭에서다.
구광모 씨 복귀가 점쳐지는 9~10월은 LG그룹 연말 정기인사를 위한 고과 기간이다. 이재용 전무나 정의선 부회장처럼 되려면 족히 10년 이상은 걸리겠지만 장자승계 원칙을 계승할 유력후보로 꼽히는 구광모 씨의 복귀가 LG그룹 내부지형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도 주목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