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자해’는 말 그대로 연인으로부터 헤어짐을 통보받았을 때 주로 이뤄진다. 온갖 방법으로도 설득이 되지 않을 시 자해라는 최후의 선택을 통해 연인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것이다. 때론 홧김에 이성을 잃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 자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3월 여자 친구 집 옥상을 찾아가 자해소동을 벌인 임 아무개 씨(25)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당시 임 씨는 부쩍 자신을 멀리하는 여자 친구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직접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오전 일찍 찾아가 만남을 부탁했지만 임 씨는 문전박대를 당했고 결국 흉기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떻게든 여자 친구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임 씨는 자신의 목에 흉기를 갖다 대며 “여자 친구를 데려오라”고 소동을 벌이다 신고를 받은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이별 후 자신을 향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자해로 주목을 끌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술에 잔뜩 취한 채 홀로 모텔을 찾은 김 아무개 씨(여·27)는 곧장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물을 한가득 받은 김 씨는 망설임 없이 욕조로 들어가 금방 이별을 한 남자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김 씨가 보낸 메시지는 “동맥을 끊으면 죽을까 살까?”라는 한 문장뿐이었다. 연락을 받은 남자 친구는 곧장 경찰에 신고를 했고 48분 만에 수면제를 먹고 흉기로 자해해 의식을 잃은 김 씨가 구조됐다. 겨우 목숨을 구한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별 후 술김에 자해를 했다”며 “이러면 남자 친구가 날 찾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자해의 강도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자해가 단순 협박에 불과했다면 최근엔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 더욱이 몸에 상해를 입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목숨을 담보로 하는 자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벌써 수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김은혜 씨(가명·여·39)도 이별 자해의 피해자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 김 씨는 남자 친구였던 이 아무개 씨(당시 44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하지만 이 씨는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급기야 김 씨를 폭행해 납치하기까지 했다. 김 씨는 휴게소에서 이 씨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경찰서까지 도망쳐 나왔다.
이 씨가 이내 뒤따라 왔기에 임 씨는 차에서 내리지 못했고 형사 두 명이 함께 차량에 올라 타 그를 보호했다. 계속해서 이 씨는 김 씨에게 “다시 만나자”며 설득을 했고 아무런 반응이 없자 결국 끔찍한 선택을 하고 말았다.
미리 준비해둔 흉기를 꺼내 들곤 자신의 가슴을 향해 찔러버린 것.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주변사람들이 손 쓸 틈도 없었다. 경찰은 즉각 이 씨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사망하고 말았다. 그렇게 김 씨는 폭행과 납치를 당한 것도 모자라 옛 애인이 죽어가는 모습까지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후 김 씨는 원스톱 센터에서 치료를 받으며 지금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칼로 찌르는 건 오히려 ‘평범한’ 축에 속하기도 한다. 지난 16일 부산시 수영구 주택가 골목에서 강 아무개 씨(23)가 여자 친구의 집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자신을 피하는 여자 친구를 달래기 위해 직접 찾아갔다가 말다툼만 하고 쫓겨나자 극단의 선택을 한 것. 결국 강 씨는 목숨을 잃었고 여자 친구 역시 큰 충격에 빠졌다.
한편 자해는 살인이라는 최악의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여겨진다. 지난해 11월 이별을 통보받은 박 아무개 씨(30)는 연인을 설득하기 위해 만남을 시도하다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자 자해를 시도했다. 미리 준비했던 흉기를 꺼내 자신의 심장을 겨누며 “마음을 돌리지 않으면 죽겠다”고 위협한 것. 그러나 이 방법도 통하지 않자 끝내 박 씨는 여자 친구의 등과 목 등을 흉기로 28차례나 찔러 살해했다.
이에 대해 김보라 정신과 전문의는 “현대사회는 사람과의 관계가 지극히 좁아졌다. 자연스레 관계에 집착하게 되고 결국 자해라는 잘못된 방법으로 이를 지키려 한다. 이면에는 자해로 옛 연인에게 죄책감을 심어줘 다시 돌아오게끔 하려는 심리도 있다”며 “어렸을 때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는 법 및 연인관계에 있어서도 배려와 이해가 필요함을 가르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