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각종 경제정책을 놓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정책 중 경제계에서 가장 헷갈리는 것은 바로 경제민주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야당보다 빨리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상당한 효과를 누렸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중소기업을 가장 먼저 찾아 ‘중소기업 대통령’임을 강조하는 등 경제민주화 추진 액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았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대기업의 여러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한 조치가 신속히 이뤄졌다. 본사와 대리점 간 불공정 관행을 바꾸는 가맹사업법 개정안,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와 대기업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대주주의 적격성 심사범위를 확대하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 등이 발의됐다. 집단소송제나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도 논의되고 있다. 또 근로시간단축법과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 통상임금법 FIU(금융정보분석원)법 등 각종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국회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이나 입법은 의지를 갖고 꾸준히 잘 추진해 기업들이 건전하고 투명하게 기업을 이끌어가고 상생하는 경제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도록 하면서도 기업들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과도하게 왜곡되거나 변질돼서는 안 된다”며 속도조절에 나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동에 정부와 여당도 맞장구를 쳤다. 당장 다음날인 18일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경제 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 관세청 수장과 만나 “경제민주화와 지하경제 양성화는 시대적 과제로 반드시 계획대로 추진해 나가야 하지만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 중에는 과도하게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갈지 자 행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경제 전문가는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초반에 경제민주화를 앞세웠지만 미국의 출구전략과 일본의 아베노믹스 등으로 상황이 불투명해지자 속도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기업들이 경제민주화에 반발하고 투자를 미루면서 압박을 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경제민주화에 대한 대기업의 반발과 정치권의 과잉입법은 이미 예상됐던 만큼 명확한 로드맵을 가지고 추진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방향을 잃어버리고 오락가락하는 모양새가 됐다”고 비판했다.
공공기관장 인사도 대표적인 냉온탕 정책으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11일 첫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장 인선 기준으로 국정철학 공유와 전문성을 내세웠고, 낙하산 인사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됐던 금융공기업 수장들이 대거 물갈이되고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임영록 KB금융 회장(행시 20회)과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행시 24회), 김근수 여신금융협회장(행시 24회),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행시 26회) 등이 대표적인 모피아 인사였다. 이에 대한 비판이 일자 청와대는 지난 11일 각 부처에 공공기관장 인선 작업을 중단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모피아 인사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공공기관장 인선 작업 중단 지시를 내리기는 했지만 조만간 공공기관장에 대한 대규모 물갈이 인사가 있을 것”이라며 “자리를 바라보는 공신이 많기 때문에 인선작업을 중단할 수는 없을 듯하다”고 내다봤다.
실제 청와대 일각에서 2012년도 공공기관장 경영실적 평가가 나온 지 하루 뒤인 19일부터 대대적인 물갈이설이 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공공기관장 96명에 대한 평가 결과 해임건의 대상인 E등급을 받은 기관장은 대한석탄공사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두 곳이다. 또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투자공사 등 16개 기관장들은 경고에 해당하는 D등급을 받았다. D등급을 2번 받을 경우 해임건의 대상이지만 정권이 바뀐 상황을 고려하면 당장 물갈이 대상이 될 수 있는 D·E등급을 받은 기관장을 둔 공공기관이 전년(8곳)에 비해 크게 늘어난 18곳이나 되는 셈이다. C등급을 받은 공공기관장 30명도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 정치권 인사는 “지나치게 약속에 얽매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성격이 가져온 문제”라고 분석했다. 그는 “당선인 시절 집권 후 100% 이행할 수 있는 공약과 시기나 집행 정도를 수정할 공약 등을 나눠서 계획을 짰어야 한다. 그런데 경제사정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공약을 밀어붙이다보니 반발과 문제가 발생하고, 이 때문에 속도를 늦추면서 오락가락 행보로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준겸 언론인
이번엔 ‘행복주택’이 문제?
하지만 4·1 대책은 당장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행복주택’ 때문에 효과를 거두는 데 제약을 받고 있다. 행복주택은 철도부지에 향후 5년간 총 20만 가구의 임대주택을 짓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올해 수도권 도심 7개 지구에 약 1만 가구를 시범사업으로 추진키로 했다. 그런데 시범사업 지구로 선정된 지역 중 목동 공릉동 등 일부 지역 주민들이 집값 하락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집값은 떨어지는데 전세가격은 오르며 집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 모두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보금자리 주택 정책 때문이었다. 주변 가격 절반에 임대주택을 준다니까 집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들마저 주택 구입을 미루고 전세를 찾으면서 부동산 가격을 떨어지고 전세가격은 천정부지로 뛴 것”이라며 “행복주택도 보금자리 주택과 유사한 것이어서 시장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 효과를 좀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강해 4·1 대책의 약발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