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과 방미 경제사절단이 조찬을 함께하는 모습. 방중 경제사절단에는 이건희 회장(왼쪽서 세 번째)이 불참해 정몽구 회장의 비중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27일부터 3박 4일 간 중국을 국빈 방문하는 일정을 앞두고 재계가 술렁였다. 지난 5월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와 달리 이번에는 어떻게든 경제사절단에 포함돼야 한다는 기류가 강하게 흐른 것. 방중 경제사절단에 포함되기 위해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일부에서는 ‘로비설’까지 흘러나왔을 정도다.
4대 그룹인 삼성, 현대차, SK, LG는 물론 롯데, 두산, CJ 등 대기업들은 오래전부터 중국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실적이 부진할 경우 총수가 직접 나서서 경영진을 독려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꽌시(關係·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연줄)’가 사업적으로도 꽤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하면 이번 방중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참여해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부에 눈도장을 찍는 것은 사업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주요 대기업들은 방중 경제사절단에 총수가 참여하는지에 대해 비밀에 부쳤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명단이 발표되기 전까지 확인하기 힘들다”며 “다만 사절단에 포함된다면 아마도 회장님이 가지 않겠느냐”며 부인하지 않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방중 경제사절단에서도 박 대통령 옆자리를 차지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삼성은 물론 대한상공회의소 측도 “아무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발표하기 전까지 비밀로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회장 한 분 한 분 참석 여부를 답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 불참과 정몽구 회장 참석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방중 경제사절단 명단은 6월 20일 현재까지 아직 청와대 최고위층까지 전달되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소식통에 따르면 “삼성은 이건희 회장 대신 강호문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절단에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 강 부회장은 삼성그룹 내에서 가장 확실한 중국통인 데다 삼성 중국본사 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아예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중 경제사절단과 관련해 또 한 명 주목받는 총수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방중 경제사절단의 상징적 존재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꼽는 인사가 적지 않다. 다시 말해 방미 경제사절단에 이건희 회장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정몽구 회장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만큼 ‘꽌시’를 중시하는 중국에서 정 회장이 박 대통령 방중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을 가능성도 있다. 이 회장이 귀국 후 ‘통큰’ 투자계획을 발표했던 것처럼 정 회장 역시 귀국 후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코드를 맞추는 보따리를 풀어놓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중국은 지난해 자동차 생산량 1927만 대, 판매량 1491만 대로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현대·기아차의 전 세계 판매량 중 중국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20% 정도니만큼 정몽구 회장으로서는 중국시장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에서 자동차 판매량이 매년 꾸준히 늘어 2015년 이후에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태다. 현대차는 현재 중국시장에서 폭스바겐, GM과 패권다툼을 벌이고 있는 데다 베이징 1~3공장에 이어 4공장을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
재계 고위 인사는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이는 방중 경제사절단에서 정 회장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향후 중국사업의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이건희 회장이 없는 자리에서 재계 2위 기업 총수로서 정 회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클 수밖에 없다.
한편 비자금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있는 최태원 SK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 검찰의 비자금 수사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된 이재현 CJ 회장 등 일부 대기업 총수들은 청와대가 중국에 가자고 해도 갈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특히 SK와 CJ의 경우 다른 기업 못지않게 총수가 직접 중국시장을 강조하고 경영진을 질타·독려해온 터라 큰 기회를 놓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을 듯하다.
SK는 지난 방미 경제사절단에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최 회장을 대신했으나 방미 기간 내내 대기업 회장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계 고위 인사는 “대기업 회장이 즐비한 자리에서 김 의장이 설자리는 없었을 것”이라며 “방미 경제사절단과 관련해 SK와 김 의장의 얘기가 거의 나오지 않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다음 사정 타깃?… ‘CJ 꼴 될라’
재계 일각에서는 ‘경제사절단에 포함되지 않으면 다음 사정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가뜩이나 CJ그룹 다음 타깃이 어느 기업이 될지 어수선한 가운데 이 같은 소문까지 덧붙여져 기업들이 바짝 긴장했다. 소문의 원인은 방미 경제사절단에 CJ가 제외됐다는 데 기인한다. 당초 CJ는 방미 경제사절단 명단에 포함됐으나 마지막에 청와대에서 CJ를 탈락시켰다는 것.
이에 대해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으나 재계에서는 청와대의 부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방중 경제사절단 규모가 유례없이 크고 기업들이 방중 경제사절단에 포함되기 위해 애쓰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는 것.
이번 방중 경제사절단 규모는 50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방중 당시 30명,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 36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크게 늘어났다. 중국사업의 중요성이 최근에 새삼 불거진 것도 아닌데 갑작스레 확 늘어났을 뿐 아니라 기업들의 경쟁마저 치열해진 까닭을 박근혜 정부의 대기업 사정에서 찾은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방미 때 수준으로 맞추지 않겠느냐”며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고 있어서 경제사절단에 포함되지 않으면 찜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