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바드> | ||
취업 단계부터 걸림돌이 되는가 하면 어렵게 회사에 들어와도 학벌의 벽에 부딪힐 때가 많다. 대학생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에서도 성공 요소 영순위는 학벌이었다. 현실적으로 직장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말이다.
학벌 때문에 당하는 억울한 일, 학벌 콤플렉스로 인한 남모를 고민 등 젊은 직장인의 ‘학벌 OTL(좌절)’ 하소연을 들어봤다.
한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국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정규직 직장인을 대상으로 학벌 관련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 결과 5명 중 1명이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학벌로 인해 소외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기업이나 고학력자가 몰려 있는 집단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높게 나타났다. 같은 학교 출신끼리 이익집단을 형성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금융회사 법무팀에 재직 중인 C 씨(32)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법 관련 분야도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석사를 할 때부터 출신 학교에 따라 은근히 차별하는 경우를 봤는데 회사에 들어오니 다르지 않네요. 몇 명을 제외하곤 거의 같은 대학이더라고요. 처음 맛본 소외감 때문에 입사 초기에는 속상할 때가 많았어요. 자기네끼리 회식을 하면서 연락 한 번 없더군요. 불합리하고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합니다. 솔직히 다시 학교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갑자기 변하지도 않을 테니 마음을 비우는 게 제일 속편하죠.”
그 파벌 집단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게 C 씨의 생각이다. 다른 동료는 어떻게든 줄을 대서 친해져 보려고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안쓰러웠다고. 그는 “직장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피해를 입어도 드러내놓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없어 참는다”고 털어놨다.
학벌이 승진 등을 위한 인사고과에도 반영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직장인들도 많다.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J 씨(33)도 승진 때문에 말 못할 억울함을 겪었다.
“지방대 출신이지만 대학 때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당당하게 입사했습니다. 입사만 하면 만사형통일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죠. 이 안에서 ‘또 다른 리그’가 시작되는 줄 짐작도 못했어요. 그저 손 놓고 있거나 지방대 출신이면 ‘아웃’당하기 쉽더군요.
4년차에 겨우 대리 직급을 달았는데 그전에 입사 1년 후배가 먼저 대리를 달았어요. 누가 봐도 경력으로나 능력으로나 제가 먼저 승진하는 게 옳았죠.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상무와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것. 그거 하나입니다.”
‘자격지심’일 수도 있지만 J 씨는 외국계 회사에 입사한 대학 동기가 부럽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토종 기업보다는 학벌로 인한 문제가 적기 때문이다.
그는 “능력을 배제한 학벌 중심 인사는 거의 없다는 친구 이야기를 들었다”며 “월급이 좀 더 많은 것보단 마음이 편한 곳이 낫다”고 토로했다. 지방대학교 출신이라는 것이 족쇄가 되어 콤플렉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광고 기획사에 근무하는 N 씨(32)는 실제로 무시를 당하지 않더라도 그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단다.
“누가 딱히 뭐라고 하거나 현재까지는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의 경우를 겪진 않았지만 학벌에 대한 강박관념이 좀 있어요. 업무에 있어서나 상식적인 측면에서 누구한테 뒤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즐겁게 이야기하다가도 별것 아닌 농담에 표정이 어두워질 때가 많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일단 나이와 학교를 꼭 물어보는데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어물거리게 됩니다. 그럴 때 제 자신이 참 한심해서 한때 대학원까지 생각해 봤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N 씨는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쉽게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다. 동료들이 일부러 앞에서 학교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도 고마우면서 속상하다.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일부러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한다”며 “학교를 떠나 사람 가볍지 않고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 지나치게 진지한 면이 있다”고 고백했다.
컨설팅 회사 인사부서에 근무했던 O 씨(여·33)도 학벌에 관한 비화가 있다.
“컨설팅 업무이기 때문에 고급인력 확보를 제일 중시하는 회사였어요. 이때 기준이 되는 게 실제 능력보다는 아무래도 학벌과 ‘스펙’(공인된 능력)이죠. 인성보다 앞서는 조건이에요. 학벌 때문에 승진에서 누락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학벌이 기준 미달이면 뽑지를 않았어요. 회사 내에서도 출신학교가 좋으면 ‘우수인력’으로 분류돼 연봉계약을 할 때부터 추가 수당 지급을 약속합니다. 이 부분은 모르는 사원들도 많았고요.”
O 씨는 나중에라도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 항의하는 직원이 없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는 “능력을 과소평가 받거나 이로 인한 차별을 받았을 때는 거세게 항의하던 사람들도 학벌 앞에서는 순해진다”며 “출신학교를 평가의 잣대로 삼는 것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소위 말하는 ‘SKY’ 출신이 아닌 취업 준비생 H 씨(29)는 스펙 올리기에 한창 열중하고 있다. 학벌로 인한 폐단이 기업문화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상 몸값을 올리는 방법은 이력서를 꽉 채울 스펙뿐이다.
그는 “명문대와 학벌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기득권층이 가진 권리를 가장 손쉽고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편이기 때문”이라며 “여러 사회적 노력이 펼쳐지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라고 평가했다.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