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석래 회장이 지난달 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모습. 이날 그는 “하이닉스 인수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지난 9월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단 회의 직후 그는 기자들에게 “하이닉스나 대우건설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않았다”며 “우리가 인수할 기업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9월 22일 막상 하이닉스 인수전의 뚜껑을 열자 효성만이 유일하게 의향서(LOI)를 제출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이와 관련해 후계구도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둥 여러 가지 추측들이 무성하게 나오고 있다.
원래 교수가 꿈이었던 조석래 회장은 재계에서도 신중함과 꼼꼼함으로 정평이 나 있다. 기업문화도 조 회장을 닮아 신중하고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효성이 갑작스럽게 하이닉스 인수전에 뛰어들자 시장에서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무리하게 대우건설을 인수해 허우적대는 금호아시아나그룹처럼 ‘승자의 저주’에 빠질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효성의 재무구조가 하이닉스를 인수하기에는 빈약하다는 것이다. 총자산이 8조 4240억 원으로 재계 서열 33위인 효성이 총자산 13조 5000억 원으로 11위인 하이닉스를 인수한다는 것에 대해 ‘보아뱀 M&A’ ‘고래를 잡아먹는 격’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셈이다.
하이닉스 지분 28%를 인수하기 위해 약 4조 원이 필요하지만 효성의 최대 자금 동원력은 2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실제로 인수 의향서 제출 소식이 알려진 후 3거래일 동안 효성의 주가는 하한가를 포함해 무려 32.51%나 폭락, 지난 25일 7만 200원으로 장을 마쳤다. 하이닉스도 된서리를 맞아 14.65% 급락하며 2만 원대 밑으로 추락했다.
그런데 이후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하이닉스 매각 공동주간사단 관계자가 “하이닉스는 매각 금액도 중요하지만 매각 자체를 성사시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며 “매각 대상 지분 28%를 한 번에 매각하는 것이 어렵다면 15% 일부만 매각하는 등 다양한 방식들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효성이 지분 15%만 인수한다면 필요한 자금은 1조 6760억 원까지 줄어들 수 있고 경영권 프리미엄을 20%로 가정한다고 해도 2조 112억 원이면 인수가 가능하다.
이럴 경우 효성은 1조 원을 자체 자금으로 조달하고 나머지 1조 원은 하이닉스 주식을 담보로 차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충분한 ‘실탄’을 마련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효성 측은 “아직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통보된 것은 없다”며 “인수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영진M&A연구소 김영진 소장도 “언론에서 효성의 하이닉스 인수를 부정적으로 보지만 M&A는 내부 자산만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기법을 이용한다”면서 “효성도 사모 투자 등과 함께 하이닉스 인수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효성의 친인척 중 한 명이 삼성반도체 임원으로 근무해 반도체 시장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듯하다”면서 “삼성이 전자로 세계기업이 된 것처럼 효성도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 전자 부문에 접근하는 것이 가장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효성의 인수 의지도 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석래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를 위해 3개월 전부터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고 재계는 물론 정·관계 인사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다.
▲ 조현준 사장 | ||
일각에서는 효성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며 후계구도 작업을 완수하려 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효성이 반도체 업종을 이용해 발광다이오드(LED) 사업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후계구도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
<전자신문>에 따르면 이러한 움직임은 효성이 ‘신성장 동력’으로 그룹 차원에서 LED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에 나선 배경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효성은 지난 7월 말 LED 에피웨이퍼 전문업체였던 자회사 에피플러스의 사명을 갤럭시아포토닉스로 변경했다. 갤럭시아포토닉스는 다른 자회사인 갤럭시아일렉트로닉스와 함께 LED 칩·패키징·조명에 이르는 LED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한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효성가의 장남 조현준 사장이 갤럭시아포토닉스의 신임 대표로 선임되고 기존 경영진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교체돼 새로운 진용을 구축했다.
특히 효성은 이미 전 세계 D램 시장의 회복과 함께 메모리 반도체 설비를 LED 제조 공정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설비를 LED 제조로 전환한 대표적인 예는 삼성LED로 꼽힌다. 지난 4월 출범한 삼성LED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반도체 3라인을 LED 칩 라인으로 전환, 양산하고 있다. 기존 반도체 설비를 LED 설비로 바꾸면 건물과 클린룸 구축비용 및 시간이 크게 단축되고 기존 반도체 라인의 설비를 개조하면 LED 칩 제조 공정으로 쓸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하이닉스를 인수해 반도체 사업 신규 진출의 위험부담을 줄이면서 그룹 차원의 신성장 동력인 LED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게 효성의 노림수라는 관측이다. 여기에 조현준 사장이 LED 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하이닉스 인수전은 후계구도까지 연결된다.
한편에서는 현재 조 사장의 ㈜효성 지분이 6.94%로, 동생 조현문 부사장의 6.99%보다 낮고 조현상 전무의 6.73%보다 약간 높은 것을 근거로 아직까지 조 사장의 후계구도가 안정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번 하이닉스 인수와 경영을 통해 조석래 회장이 조현준 사장의 경영 능력을 시험하게 될 것이라고도 분석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 기업인 효성이 현 정부 내에서 덩치를 키우고(하이닉스 인수시 재계 33위에서 순식간에 10위 내 진입) 3세 경영을 위한 기본 포석을 완벽하게 다지길 원한다는 관측도 주목받는다.
이러한 분석과 관련해 효성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는 너무 앞선 분석”이라며 “하이닉스 인수 참여는 그룹 차원에서 앞으로의 성장 동력을 넓히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