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이정화 여사 | ||
정몽구 회장은 사석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결혼했을 때”라고 거침없이 이야기했을 정도로 고 이정화 여사와 금슬이 좋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정 회장과 이 여사의 만남은 연애결혼에 관대한 현대가 분위기가 일조했다. ‘왕회장’(고 정주영 창업주)은 연애결혼 예찬론자로 알려져 있다. 그 자신이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부인 고 변중석 여사를 만났기 때문이다.
평범한 실향민 집안의 셋째딸로 태어난 고 이정화 여사는 숙명여고를 졸업한 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재학 중에 정몽구 회장과 만나 결혼했다. 일부 언론에서 이 여사가 현대건설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정 회장을 만난 것으로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결혼 후 이 여사는 외부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한 내조로 1남 3녀를 키웠고, 손윗동서인 이양자 여사가 1991년 암으로 세상을 뜬 후 현대가의 실질적인 맏며느리 역할을 맡았다.
지난 2007년에 별세한 시어머니 고 변중석 여사가 거동이 불편해져 18년 동안 병석에 누워 지낼 때 틈날 때마다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시어머니 병구완을 극진히 했다고 한다. 2006년 조카인 정대선 현대비에스엔씨 대표이사가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와 결혼할 때는 집안 큰어머니로서 상견례와 결혼식에 참석했다.
왕회장 생전엔 매일 새벽 3시 30분이면 한남동 자택에서 청운동 시댁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려가 아침 식사를 손수 준비했다. 왕회장이 오전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과 자식들에게 근검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며느리들은 아침준비를 하며 시어머니로부터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이 여사는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정몽구 회장을 헌신적으로 내조하며 현대·기아차그룹을 세계 자동차업계 5위 규모로 키워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여사는 자녀들에게 항상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을 들려주며 겸손을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쳤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도 상대방을 공손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대해 자식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그랬듯 이 여사도 가정과 가문을 돌보는 일에 매진하다보니 경영에 참여하거나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2003년 그룹의 레저부문 계열사인 해비치리조트 이사직을 맡으면서 외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대표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세상을 등지기 전까지 해비치리조트 지분 16%를 가진 대주주이자 고문이었다.
이처럼 외부 활동을 꺼리던 이 여사도 자식을 위한 일에는 발 벗고 나섰다. 외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관련된 행사에는 적극적으로 참석했던 것이다. 이 여사는 지난해 1월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제네시스’ ‘모하비’ 신차발표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정 부회장이 “어머니,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자 행사장 구석에 앉아 있던 이 여사의 존재를 그룹 임직원들도 그때서야 알아차렸다고 한다. 지난해 10월에는 파리에서 열린 국제모터쇼에 며느리 정지선 씨와 함께 참석, 정 부회장의 영어 연설을 경청하고 격려하기도 했다.
고 이정화 여사가 공식석상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3월.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에쿠스’ 신차발표회에 남편 아들 등과 함께 참석한 것. 당시 행사 후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이 귀빈들과 뷔페식을 나누고 있을 무렵 행사장 한켠에 있던 며느리 정 씨는 이 여사의 팔짱을 끼며 “어머니, 우리 자장면 먹으러 가요”라고 말했고 두 사람은 곧 총총히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고 이정화 여사는 초특급 호텔 뷔페보다 자장면이 어울릴 법한 소박한 뒷모습을 남기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
현대 '일가 배려' 스토리
'하늘에서 아들딸 걱정마!'
현대가 창업주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슬하에 8남 1녀, 9남매를 둬 대가족을 이루었지만 장남 정몽필 씨와 넷째아들 정몽우 씨를 먼저 가슴에 묻어야 했다. 1970년대 말 고 정몽필 씨는 정부로부터 국영 적자기업인 인천제철을 인수해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다 1982년 4월 울산 현장을 시찰하고 서울로 올라가던 고속도로에서 트레일러에 들이받히는 교통사고로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다.
장남을 잃은 고 정주영 회장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고 정몽필 씨는 부인 이양자 여사와 두 딸인 은희·유희 씨를 남기고 떠났다. 한 달 뒤, 왕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양자 여사의 친동생 이영복 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키며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을 배려했다. 하지만 이양자 여사도 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고 정주영 회장의 막내동생 정상영 KCC 명예회장도 부모를 다 잃은 자신의 조카손녀들을 챙겨주고 있다. 현재 KCC 주주 현황을 살펴보면 은희 씨가 0.21%의 지분을, 유희 씨가 0.4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KCC의 한 관계자는 “조카 손녀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주식을 조금 나눠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넷째아들 고 정몽우 씨는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으며 활동하다 평소 심하게 앓아오던 우울증으로 결국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로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유족을 돌보는 일은 첫째의 죽음으로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하던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몫이었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기아차그룹의 계열사 BNG스틸(전 삼미특수강)에 입사시켰다. 몽우 씨의 장남인 일선 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2005년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둘째인 문선 씨는 이사로 근무 중이고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와 결혼을 해 화제가 됐던 막내 대선 씨는 현대비에스엔씨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