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1999년 만들어진 ‘다우 10,000’ 모자를 쓴 UBS의 객장 감독 아서 캐신이 2009년에 나온 2.0 버전의 다우 모자를 들고 있다.AP/연합뉴스 | ||
전문가들은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에 따라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따라서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미국 금융주의 실적 호재와 함께 환율이라는 태풍에도 안전한 내수주 대표주자인 금융주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우지수는 지난해 10월 3일 10325.38을 찍은 뒤 금융위기 여파로 폭락세를 거듭, 3월 9일에는 12년 만의 최저치인 6547.05까지 추락했다. 위기감을 느낀 각국 정부는 대규모 경기부양책 시행에 돌입했고, 세계경제 회복의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경기침체로부터의 탈출이 본격 시동을 건 것이다.
이후 각국 증시에서 ‘유동성 랠리’(경기나 기업 실적이 안 좋은 상황에서 돈의 힘으로 이뤄지는 주가 상승)가 이어졌다. 여기에다 미국시장에서는 대형 투자은행들이 ‘스트레스 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를 큰 과오 없이 통과하고, 미국 기업들이 올 2분기(4∼6월) 어닝서프라이즈를 발표하면서 증시 상승에 탄력이 붙었다. 골드만삭스가 견조한 실적 발표로 투자등급이 상향되면서 이른바 ‘골드만삭스 효과’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미국 금융주의 실적은 좋다. 금융주 가운데 가장 먼저 실적을 공개한 JP모건체이스의 3분기 순익은 예상치인 주당 51센트를 크게 넘어선 82센트에 달했다. 다음날인 15일에 발표한 골드만삭스와 씨티그룹의 실적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골드만삭스는 3분기 순이익이 31억 9000만 달러(주당 5.25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8억 4500만 달러(주당 1.81달러)의 3배를 넘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시장 전문가들이 예측했던 주당 4.18달러도 넘어선 것이다. 또 씨티그룹은 3분기 1억 100만 달러의 순익을 냈다. 다만 정부와 일부 주주들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탓에 주당 27센트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국 주요 기업들은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예상보다 좋은 실적을 내놓고 있다. 제조업과 소비, 주택시장의 주요 지표들도 바닥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날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9월 중 소매판매는 전월에 비해 1.5% 감소했지만, 자동차를 제외할 경우 0.5% 늘어나 2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특히 금융주의 실적 호전이 다우지수 강세를 뒷받침했다는 점에서 국내 관련 업종에도 상승 추진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성봉 삼성증권 연구원은 “각국 금융정책이 실제로 기업실적 회복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컸다”며 “3분기에 IT를 중심으로 미국의 제조업과 금융업종의 실적 개선세가 나타난 것이 다우지수 10000선 돌파의 힘이 됐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는 그러나 미국발 훈풍보다는 오히려 원·달러 환율이 연일 연중 최저치를 경신, 환율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매수주체나 주도주, 모멘텀 등 뚜렷한 호재가 없는 상황에서 환율 급락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수출주가 먼저 환율에 발목을 잡혔다. 환율 하락은 수출주의 수익을 악화시키고 수급에서도 외국인 매도세를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환율 하락 속도. 완만한 하락은 기업이 체질을 강화하고 원화 강세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급격한 하락은 수출주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이병수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달러 약세로 엔화도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원화 강세 속도가 더 빠른 편”이라며 “일본과의 수출 경합도가 큰 IT, 자동차 업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영향으로 증시가 최근 소폭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업종별 실적호전은 4분기(10∼12월)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실적호전 업종은 에너지, 자동차 및 부품, 유통, 금융업종이다. 특히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금융업은 4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보다 4.75% 증가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의 관심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적 호전세가 가시화되고 있는 금융업종에 쏠리고 있다. 특히 은행업종이 주목을 받는다. 우선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의 합병 가능성이 이슈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대출연체율이 1년래 최저치로 떨어지고 환율 하락으로 키코 손실에서 벗어난 데다 미국 금융업종의 강세까지 긍정적인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은행 중에서는 대구은행 부산은행이 탄탄한 대주주인 삼성 롯데의 힘과 시중은행의 두 배에 가까운 순이자마진으로 추세적 강세다. 증권가에서는 합병 재료 면에서는 우리금융 하나은행 등이 앞설 수 있으나 결국 실적과 이익의 안정성 면에서 신한지주, 그리고 지방은행 중 대구은행을 추천하고 있다.
반면 증권업종은 반등이 있더라도 큰 모멘텀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대세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펀드 환매 마무리, 코스피의 추세적 상승에 대한 확신, 주식 거래대금 10조 원 유지 등의 전제조건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당분간 증권업종의 상승 여력은 제한적”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애물단지였던 글로벌 금융주 펀드의 수익률이 개선될지도 관심사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15일 기준 우리나라 액티브 주식형 펀드 중에는 금융테마펀드인 ‘미래에셋솔로몬아시아퍼시픽파이낸셜서비스증권투자신탁 1(주식)종류A’의 수익률은 연초 이후 62.68%를 기록했다. 이 펀드를 포함해 국내외 금융펀드의 유형별 평균 수익은 연초 이후 43.50%를 기록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모습이다. 사실 금융주에 투자하는 펀드는 해외주식형펀드 평균 수익률인 53.16%에 못 미쳐 그동안 선방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미국 상업은행들이 깜짝 실적을 낸 데 이어 국내 금융주의 향후 실적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전망이 이어지면서 그동안 다소 냉대 받던 금융주 펀드의 수익률도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대열 하나대투증권 펀드리서치팀장은 “금융위기의 핵심인 금융주가 여러 우려에도 실적을 내고 있다는 기대감에 주목을 받고 있는데, 3분기 정도까지는 추가상승 여력이 있다고 본다”면서 “IT업종에 뒤이은 주자로 금융주가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류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