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영기 KB금융 회장(왼쪽)이 9월 29일 서울 명동 KB금융 본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회장 대행을 맡게 될 강정원 국민은행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지난 9월 25일, 황영기 전 회장은 KB금융 1주년 기념식을 끝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KB금융호는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회장직무대행을 맡아 이끌게 됐다. 새로운 선장, 강 행장은 직무대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돼 KB금융 핵심 임원과 부서장들에 대한 ‘속전속결식’ 인사를 단행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새로운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 임시로 자리를 맡은 직무대행이 대대적으로 인사를 강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강 행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자신의 측근들을 전진배치하고 황 전 회장 라인은 철저히 배척했다. 자신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되는 최인규 국민은행 전략담당 부행장을 KB금융의 요직인 전략담당 부사장 겸임으로 한 것이다. 최 부행장은 국민은행의 재무와 전략 모두를 담당하는 은행 내 2인자로 알려져 있다. 현 업무 중 재무는 제외되고 대신 금융지주사의 전략을 맡아 강 행장을 보필하며 브레인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된다.
최 부행장은 국민은행 전략기획팀장과 전략본부장, 전략그룹 부행장을 거친 대표적인 ‘전략통’.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처음 매각하려던 당시 국민은행의 인수팀 실무책임자를 맡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경험이 있다. 그는 이러한 실력을 바탕으로, M&A(인수·합병)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강 행장을 위해 다시 한 번 ‘솜씨’를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측근 신현갑 KB금융 재무담당 부사장은 국민은행 재무를 총괄 겸임하게 됐다. 신 부사장은 시티은행과 외환카드 등에서 CFO(Chief Financial Officer·최고재무책임자)를 지내고 국민은행 재무관리그룹 부행장과 지주회사설립기획단장을 역임하며 ‘재무통’으로 소문이 나 있다. 결국 강 행장은 자신의 측근인 최 부행장과 신 부사장이 지주사와 은행의 전략과 재무를 겸임하도록 판을 짜 ‘친정체제’ 구축을 확실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 행장은 부장급 인사도 단행했다. 전략기획부장, 시너지추진부장, 홍보부장, HR(인사)부장, 감사부장 등 주요 핵심부서의 부서장을 교체한 것이다. 새로 임명된 윤웅원 전략기획부장은 지주사 경영관리부장과 국민은행에서 전략부장과 재무팀장을 지낸 경험이 있다.
나머지 부장들도 국민은행 출신들로 채워졌다. 남훈 시너지추진부장은 상계역지점장, 김영윤 홍보부장은 서잠실지점장, 정훈모 HR부장은 마케팅부장, 배상준 감사부장은 태평동지점장 출신으로 이번에 대거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섰다. 이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강 행장이 자신의 오른팔을 요직에 심어 행장 임기가 끝나는 내년 10월까지 KB금융 회장 대행으로서 실권을 행사하다가 그 후 임기 3년인 회장직에 도전하려는 ‘장기집권플랜’에 들어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 황 전 회장 라인은 철저히 배척돼 이런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황 전 회장이 영입했던 지동현 전략담당 부사장에겐 보직을 주지 않아 사실상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지주사 출범과 함께 합류해 황 전 회장의 손과 발이 돼주었던 문영소 이동철 심성태 김승재 조용진 김동수 부장이 모두 무보직 조사역 발령을 받았다.
회장대행으로서 강 행장의 첫 인사에 대해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조직 안정을 최우선으로 해 이루어진 것으로 아직 인사가 완료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러난 사람들의 보직 여부도 좀 더 상황을 지켜봐 달라”며 “강 행장을 중심으로 은행과 지주사를 모두 총괄하는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식 회장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은 너무 앞서간 것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내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보복인사 논란이 나오며 뒤숭숭한 분위기”라며 “향후 황영기 전 회장 라인 쪽 사람들을 더 숙청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강 행장도 언론과 내부에서 숙청 논란이 일자 내심 당황해 조직을 먼저 추스르면서 속도조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 행장이 최측근 인사를 바탕으로 M&A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가 지난 13일 전경련 경제정책위원회에 참석해 기자들에게 “증권사 인수는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진행을 하고 있다”며 “나중에는 은행 인수를 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혀 M&A에 강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강 행장은 지난 2006년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내정됐지만 금융당국의 반대로 인수를 성사시키지 못한 아픈 경험이 있다. 그때 인수에 성공했다면 강 행장의 주요 치적으로 남아 지주사 출범 때 첫 회장 자리를 황 전 회장에게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에게는 쓰라린 추억이다.
당시 실무책임자였던 최인규 부행장을 다시 전면에 등장시킨 것은 강 행장이 외환은행 인수에 다시 한 번 시동을 걸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만약 이번에야말로 M&A를 성사시킨다면 강 행장이 KB금융 회장에 무난히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그러나 KB금융의 후임 회장 자리에 김석동 전 차관,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 전직 관료 출신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어 강 행장이 방심을 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강 행장의 별명은 ‘미스터 세븐일레븐’. 매일 오전 7시에 출근, 밤 11시에 퇴근할 정도로 부지런하다 해서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첫 인사에서부터 ‘세븐일레븐’보다 ‘검투사’에 가까운 인상을 심어준 그에게는 새 별명이 필요한 듯하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