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삼성그룹 계열사 삼성SDS와 삼성네트웍스는 각각 이사회를 열고 내년 1월 합병을 결정했다. 합병주체는 삼성SDS며 합병 비율은 삼성SDS 1주당 삼성네트웍스 0.15주다.
두 회사의 합병은 올 초 그룹 정기인사를 통해 삼성SDS 대표이사인 김인 사장이 삼성네트웍스 대표이사 사장을 겸직하게 되면서 예견돼 왔다. 이번 합병 결정은 두 회사가 과거 ‘한몸’이었던 인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는다. 지난 1985년 5월 삼성SDS로 설립됐다가 2000년 3월 인적분할을 통해 삼성네트웍스가 떨어져 나갔다. 삼성그룹은 10년 만에 두 계열사의 재결합으로 탄생될 합병법인이 국내 정보통신기술 업계를 대표할 대형 업체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SDS와 삼성네트웍스는 모두 비상장 법인이다. 상대적으로 주가 변동 폭이 크지 않은 장외주식시장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합병 소식이 전해진 지난 15일 두 회사의 장외 주가는 2~3%가량 상승했다. 증권가에선 이 같은 현상을 ‘합병법인 상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합병을 통해 회사 가치를 키워 상장할 경우 주주의 이익이 극대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측은 두 회사의 대주주 명부에 삼성그룹 오너일가가 포함돼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끈다. 삼성SDS의 경우 삼성전자가 21.27%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에 올라있으며 삼성물산이 17.96%, 삼성전기가 8.29%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이건희 전 회장의 지분율은 0.01%에 불과하지만 이재용 전무가 9.14%, 이 전 회장 맏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와 둘째딸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가 각각 4.56%씩, 적지 않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네트웍스의 지분구조도 비슷하다. 삼성전자가 23.07%를 보유한 최대주주며 삼성물산(19.47%) 삼성전기(8.99%)가 2, 3대 주주에 올라있다. 역시 이건희 전 회장 지분율은 0.03%에 불과한 반면 이재용 전무가 7.64%, 이부진-서현 자매가 각각 2.81%씩 갖고 있다.
이번 합병은 이재용 전무로의 안정적 승계를 위한 ‘이부진-서현 자매 계열분리설’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끈다. 이재용 전무가 연말 혹은 내년 초에 단행될 삼성그룹 정기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할 것이란 관측이 퍼진 상태라 이 전 회장 딸들의 분가행보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이부진-서현 자매는 각각 호텔신라와 제일모직에서 전문경영인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으나 정작 호텔신라와 제일모직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아킬레스 건으로 거론돼 왔다. 이런 까닭에 삼성SDS와 삼성네트웍스의 10년 만의 재결합이 이들 자매의 ‘지분 확보용 실탄 불리기’ 작업의 일환으로 비치기도 한다.
비록 호텔신라 지분은 없지만 이부진 전무는 경영보폭을 확대하면서 오빠인 이재용 전무와 곧잘 비교될 정도로 이름값을 높여가고 있다. 지난 9월엔 삼성그룹 지주사 격인 삼성에버랜드의 전략기획실장을 겸직하게 되면서 에버랜드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됐다. 이는 호텔신라와 에버랜드 외식사업부 합병설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부진 전무는 삼성석유화학 지분 33.19%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항간에 삼성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화학 계열사 합병작업이 진행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면서 분가 때 이부진 전무 몫이 얼마나 될까에 대한 재계의 궁금증을 키워주고 있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재용 전무가 지분 25.10%를 보유해 그룹 지배력 근간으로 삼고 있는 에버랜드에서 이부진 전무가 지분 8.37%를 갖고 있다는 점은 이부진 전무의 그룹 내 영향력 강화의 발판으로 평가받아 왔다.
언니와 마찬가지로 에버랜드 지분 8.37%를 보유하고 있는 이서현 상무의 향후 행보 또한 관심거리다. 제일모직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등을 통해 전문경영인으로 인정받고는 있지만 그룹 내 입지 측면에선 오빠와 언니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이번 합병이 이 전 회장 딸들의 계열분리용으로 쓰일 경우 이미 손에 쥔 것이 많은 이부진 전무보다는 이서현 전무 쪽에 더 많이 돌아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이재용 전무 몫이 될 게 확실한 삼성전자가 삼성SDS-네트웍스를 지배하고 있는 데다 김인 사장에 대한 이재용 전무의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현재로선 합병법인에 대한 이부진-서현 자매의 향후 영향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어찌 되든 이재용 전무로의 승계 가속화가 예상되는 시점에 벌어진 삼성SDS-네트웍스 합병이 삼성가 후계구도를 여러 갈래로 해석할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