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맨’ 출신 이상철 전 장관(사진)이 LG 3콤의 통합법인 최고경영자로 내정된 후 1, 2위 업체인 SKT, KT 내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 ||
KT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한전의 LG텔레콤 합병법인 지분 보유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는 정부가 추진 중인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인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사업 때문이다. 스마트 그리드는 기존의 전력망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전력 공급자와 소비자의 실시간 양방향 정보 교환을 가능케 해주는 전력망을 뜻한다.
이 사업에선 기존 전력망을 쥐고 있는 한전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전이 LG파워콤 지분 38.8%를 갖고 있다는 점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LG 3콤 합병으로 설립될 통합법인 LG텔레콤에서 한전은 7.5%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한전과 민간기업 LG의 지분 교류를 통한 스마트 그리드 사업 독점 폐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KT의 LG 3콤 합병 반대 명분인 셈이다.
이보다 앞서 LG 3콤 합병에 제동을 건 것은 KT 사장(2002년 8월~2005년 8월) 출신 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이다. 이 의원은 지난 10월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전의 LG파워콤 지분이 정리되기 전에 합병을 인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지난 6월 KT가 KTF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타 통신업체들이 독점 폐해 우려를 이유로 합병 작업에 딴죽을 걸었던 것을 KT가 답습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통신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LG텔레콤이 어차피 이동통신 시장 꼴찌였는데 합병한다고 독점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 “KT-KTF 합병은 되고 LG 3콤은 안된다는 말인가” 등의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석채 회장 체제 출범 이후 KT가 스마트 그리드 사업에 공을 들여온 점 역시 LG 3콤 합병법인과 한전의 밀착관계를 물고 늘어지게끔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도 KT의 LG 3콤 합병 제동 걸기는 ‘KT맨’으로 각인돼 있던 이상철 전 장관의 LG행으로 초래될지 모를 KT 내부의 동요를 막으려는 KT 경영진의 노림수로 해석되는 분위기다.
한편 SK그룹의 SK텔레콤-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 합병 추진 여부가 또 다시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10월 2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합병 검토한 적 없다”고 밝혔지만 KT-KTF 합병과 LG 3콤 합병을 통한 거대법인 출범이 SK텔레콤-브로드밴드 합병을 부추길 것이라 보는 업계의 시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SK텔레콤 수뇌부 인적 구성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이상철 전 장관의 LG행 발표 직후 증권가에선 ‘통신사업을 하는데 정부 부처와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 만큼 이석채 이상철 등 전직 정부관료 CEO 등장에 자극 받은 SK가 관료 출신을 물색할 것’이란 풍문이 나돌기도 했다.
연말에 있을 정기인사를 앞두고 SK그룹 안팎에선 최태원 회장의 친동생 최재원 SK E&S 부회장이 SK텔레콤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그룹 내에서 추진력을 높게 평가받아온 최 부회장이 SK텔레콤을 맡아 SK텔레콤-브로드밴드 합병 논의 등 산적한 사안들을 주도할 것이란 관측이 퍼지는 것이다.
최재원 부회장은 올 초 그룹 지주사인 SK㈜와 주력사인 SK텔레콤의 등기임원으로 선임됐다. 지난 2004년 SK글로벌 분식회계와 소버린 경영권 침공 사태로 물러난 이후 5년 만에 SK텔레콤 경영에 관여하게 되면서 ‘SK텔레콤 대표이사로 가는 전초과정’이란 해석까지 낳은 바 있다. 최 부회장이 지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SK텔레콤에 재직하면서 차세대 이동통신(IMT 2000) 담당 임원과 전략지원본부장, 코퍼레이트센터장 등 핵심보직을 두루 거쳤다는 점 또한 기대를 높이는 대목이다.
최근 몇몇 대기업 정보팀은 ‘최재원 부회장이 연말 정기인사를 통해 SK텔레콤 대표이사를 맡아 기존의 정만원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투톱체제를 이룰 것’이란 전망 보고서를 작성해 최고위층에 보고했다고 한다. 최태원 회장이 오너일가 인사의 CEO 등용을 통한 책임경영으로 이석채 회장과 이상철 전 장관 등 정부관료 출신 CEO들에 맞불을 놓을 것이란 관측이다. SK텔레콤에서 최재원 부회장의 영향력이 강화될 경우 최태원 회장의 사촌형 최신원 SKC 회장이 최근 시작한 SK텔레시스 휴대폰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상철 효과’의 진원지인 LG그룹에선 조만간 대규모 조직 재편이 예상된다. LG 3콤 합병으로 중복부서 통폐합이 이뤄지면 업무가 겹치는 인력에 대한 타 계열사 전환 배치가 불가피해진다. 통합에 따른 일부 임원들의 퇴임 또한 예상된다. 구본무 회장의 양자인 구광모 씨의 그룹 복귀가 임박한 가운데 ㈜LG의 조준호 부사장 등 구 회장의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50대 초반 CEO들의 약진과 더불어 커다란 세대교체 바람이 불 전망이다.
LG그룹에선 내년 1월 1일로 예정된 통합법인 LG텔레콤 출범 준비와 동시에 연말 연초 정기인사를 위한 임직원 평가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통합법인 출범일자가 정기인사가 단행될 내년 1월 1일에 맞춰진 것이 3콤 합병을 계기로 조직의 일대 개편을 이루겠다는 구본무 회장의 속내로 풀이되기도 한다. 아울러 이상철 전 장관 주도 아래 외부 인사들의 영입이 이뤄질지 여부도 관심사다. ‘이상철 효과’가 구 회장의 후계 구상을 뒷받침할 그룹 내 물갈이 방편으로 활용될지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