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9일 부산시 대선주조㈜ 본사에서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간 가운데 직원들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신준호 푸르밀 회장. 연합뉴스 | ||
지난 10월 29일 부산지검 특수부(부장검사 차맹기)는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과 부산 동래구 사직동 대선주조 본사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네 곳의 압수수색을 통해 신 회장 일가의 주식 취득 관련 자료와 주금납입통장 등 금융거래자료, 주주총회 일지 등을 압수했고 자료 분석이 끝나는 대로 신 회장 등을 소환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신 회장 측이 대선주조 지분을 매입한 후 분식회계를 통해 기업가치를 부풀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너에 대한 검찰 수사로 혼란에 빠진 푸르밀 측은 “검찰의 수사 상황을 지켜보고 대응하겠다”며 입을 다물었다. 이번 사건이 부산 시민들의 공분을 사는 이유는 대선주조가 IMF 시절 2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간접적으로 지원받으면서 회생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당시 금융기관 부채 2500억 원 가운데 2000억 원을 탕감하는 방식이었다.
신 회장은 2004년 6월 아들과 며느리, 손자 등 다섯 명의 이름으로 사돈 최병석 씨가 대주주로 있던 대선주조를 총 600억 원을 투입해 주식 98.97%를 사들이며 인수했다. 그 후 2007년 11월 사모펀드인 코너스톤 에쿼티파트너스와 공동으로 시원네트웍스라는 회사를 설립, 이 회사에 대선주조를 3600억 원에 매각했다. 신 회장은 코너스톤 에쿼티파트너스에 펀드 형태로 200억 원을 투자한 상태다. 3년 만에 3000억 원의 막대한 시세차익을 챙긴 신 회장이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지만 한편에서 ‘먹튀’ 논란이 일었던 이유다.
특히 신 회장은 대선주조 대주주에 오른 후 부산시로부터 파격적 대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막대한 이익만 챙긴 뒤 회사를 판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주조 공장을 경남 양산이나 김해로 옮기겠다고 하자 부산시는 기장군 장안읍 일대 자연녹지 8만 3841㎡를 공업용지로 용도변경해 제공했다. 공장 이전 당시에는 20억 원에 이르는 취득·등록세 등 각종 세금을 면제해주고 토지보상업무 대행, 지방세 조사 유예, 정수장 변경 등의 지원도 이루어졌다.
부산시는 기업이 다른 지역으로 유출될 경우 지역 경제에 심각한 손실을 입힐 것을 걱정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공무원들이 서울까지 출장을 가 중앙정부를 설득하는 열의까지 보였다. 신 회장 측은 게다가 공장부지가 들어서는 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2005년에는 대선건설이라는 회사까지 설립해 120억 원짜리 공사를 수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 회장 측은 공장이 신설되자마자 대선주조를 사모펀드에 매각해 3000억 원만을 챙기고 부산과의 관계를 정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부산 지역사회는 ‘단물만 빼먹고 도망갔다’며 신준호 회장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박인호 대표는 “대선주조는 부산시민의 사랑으로 성장한 향토기업”이라며 “신 회장이 부산시민의 애향심을 악용해 뱃속만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선주조가 신 회장과 관련해 이미지 타격을 입고 흔들리는 틈을 타 부산 소주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에 재계 관계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대선주조는 부산지역 소주시장에서 74.5%의 점유율을 보이며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2위 무학(16.5%)과는 큰 격차를 보인다. ‘전국구’ 롯데의 처음처럼은 지난 7월 부산지역 소주 점유율이 2.1%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점유율에 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대선주조 ‘시원소주’의 10월 판매량이 전달에 비해 근소하게 줄었다고 한다. 대신 처음처럼의 판매율이 올라가고 있어 대선주조에 실망한 부산 시민들이 결국 ‘원조 롯데’를 선택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대선주조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는 현재의 대선주조나 그 구성원과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라며 “언론 보도로 인해 소비자들이 일시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검찰의 수사로 모든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80년간 부산지역을 지키며 지역사회에도 꾸준히 이바지해 온 기업”임을 강조했다.
신격호-신준호 관계 주목받는 까닭
등 돌린 형님, 동생 수사 팔짱?
▲ 신격호 롯데 회장 | ||
신준호 회장의 독립행보 배경에는 큰형과의 사이가 틀어져버린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1996년 신격호-준호 형제는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 등 37만 평을 놓고 마찰을 일으켰다. 신격호 회장이 신준호 회장에게 이 땅을 명의 신탁했는데 신준호 회장이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땅 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신격호 회장은 이 땅을 돌려달라며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소송을 법원에 내 법정 소송을 했고 신준호 회장에 대한 그룹 내 모든 직위를 박탈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후 신준호 회장이 일부 땅을 분할하고 소유를 양보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지만 경영일선에서 배제돼 롯데우유를 맡아 분가하게 된 것이다. 분리 당시만 해도 신준호 회장은 신격호 회장으로부터 롯데 브랜드 사용을 구두로 허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신준호 회장이 사업을 확장하며 경쟁이 불가피해지자 롯데가 롯데우유에 브랜드 사용 제재를 가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푸르밀이 탄생하게 됐고 신준호 회장과 신격호 회장의 불편한 관계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한다. 신격호 회장이 동생 신준호 회장을 위해 보호막을 쳐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는 이유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