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는 불과 며칠 전 1770선까지 밀렸다. 2011년 말, 2012년 7월 기록했던 1750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전에 이보다 낮았던 때는 2011년 9월의 1644다. 삼성증권이 역대 코스피에 대형 악재가 발생했던 때를 분석해보면 고점대비 평균 20%까지 하락했다. 올 고점이 2000 초반이니까, 이 값을 대입하면 1600선이 된다.
상단의 근거는 장기추세다. 최근 120일간 코스피 평균값이 1960이다. 증시에서는 보통 단기이동평균선이 장기이동평균선을 뚫고 올라가는 ‘골든크로스(Golden Cross)’를 상승추세 전환 기준으로 삼는다. 주가의 20일(거래일 기준) 평균값보다 60일 평균값이 높고, 60일 평균값보다 120일 평균값이 높은 상황, 정배열이다. 하지만 현재는 120일 평균보다 60일이 낮고, 60일보다 20일이 낮은, 역배열 상황이다. 즉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된 지 오래다. 현재 가장 짧은 20일 평균값이 1900이니 당장 1900 회복 여부가 관건인 셈이다.
상단인 1960은 우리 증시의 청산가치와도 일치한다. 청산가치란 현재 상장된 기업을 처분했을 때의 가치로, 장부상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가치다. 청산가치와 시장가치가 같은 때를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라고 한다. 처분(청산) 가치보다 시가총액(시장가치)이 높을수록 PBR 값도 높아진다.
키움증권이 최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코스피의 순자산가치기준 PBR 1배는 1956이다. 밴드 상단인 1960과 거의 일치한다. 결국 현재 코스피 수준은 청산가치 아래에 있으며, 이는 향후 기업들의 가치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 아래 가치가 매겨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 왜 1배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시장은 평가하는 것일까?
가장 큰 문제는 기업가치를 결정할 글로벌 자금 흐름이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중단했을 때의 영향은 아리송하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경기가 좋아지다 보니 양적완화를 중지하는 것이니 결국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 기대한다. 27일부터 나타난 삼성전자, 현대차 반등의 원동력이다.
반면 2009년 이후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의 자산(주가, 채권) 가격 상승은 미국이 푼 돈 때문인데, 이게 줄어들면 당연히 주가와 채권 가격에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많다. 2009년 이후 선진국이 푼 돈 가운데 신흥국으로 유입된 돈은 2560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은 중국, 브라질 등과 함께 신흥국 가운데 가장 큰 시장이고, 외국인들이 돈을 빼가기 좋기로는 신흥국 가운데 독보적 1위다.
최근 주가 반등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등 주요 대기업들의 올 이익 전망치가 연초 기대치에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히 많다. 올 상장사 기업이익 전망치는 올 초보다 16%가량 이미 낮아진 상태다. 기관들이 반기결산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윈도드레싱(Window Dressing·주식 매수로 주가를 끌어올려 장부상 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끝내면 주가가 다시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다.
중국 경제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최근 중국 중소형 은행에 돈 부족현상이 나타났다. 긍정론은 중국 정부가 충분히 해결할 만한 문제라는 입장이다. 반면 부정론은 부동산 버블이 꺼지는 전조인 만큼 중국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우려한다. 실제 최근 중국 중소형 은행들의 부실은 우리나라 저축은행 사태와 닮았다.
중국 중소형 은행들은 1~3년 정도 투자기간을 원하는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는 신탁상품(WMP)을 판매, 자금회수에 5~7년 걸리는 부동산이나 채권에 투자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저축은행이 시중은행보다 높은 1~3년짜리 예금을 유치해 이를 5~7년 걸리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투자하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자 문제가 생겼다.
이수정 한국증권 연구원은 “중국 중소형 은행의 유동성 문제는 7월 중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계절적 자금수요 증가, 신탁상품 만기도래 증가는 3분기 자금시장 경색, 금리상승, 중소부실기업 및 금융사 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해석도 제 각각이다. 최근 금융시장 불안은 주식시장보다는 채권시장 쪽이 컸는데, 외국인 자금이탈 여부가 논란 거리였다. 정부를 포함한 긍정론자들은 채권금리가 상승하기는 했지만 외국인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은 아니며, 여전히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늘어나는 추세임을 내세운다. 5~6월 채권금리가 급등(채권가격 급락)했지만,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보유액은 100조 원을 넘어선 것이 근거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당장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 것은 아니지만 장기채권에서 단기채권으로 갈아탄 것은 언제든 빠져나갈 준비를 갖춘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대체로 장기채권은 주로 장기 투자자들이, 단기채권은 단기간의 금리차이를 노린 단기 투자자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신동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만기까지 남은 기간평균(잔존만기)을 보면 6월 상반기에는 2년 미만 비중이 67.6%였지만, 6월 하반기 들어 96.2%로 크게 높아졌다. 현금화가 가장 쉬운 게 만기가 3년 미만 남은 채권이다. 외국인 보유채권 100조 원 가운데 96.2%가 언제든 시장을 떠날 준비를 갖췄다는 뜻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한국 증시 상황을 골프에 비유하면 ‘페어웨이 벙커(Fairway Bunker)’에 빠진 형국이다. 바로 ‘온 그린(On Green)’을 노리기보다는 일단 벙커를 빠져 나오는 게 중요하다. 미국의 양적완화 중단 이후 글로벌 경제상황, 특히 신흥국 경제에 대한 우려로 그린까지의 거리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무분별한 비관론에 근거한 투매도 경계해야 하지만, 또다시 매수기회가 왔다는 식의 낙관론에 도취되어서도 안 된다”고 조언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