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케미칼 인수전의 막이 오른 가운데, 업계 일각에서는 LG와 GS의 싸움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사진은 웅진그룹 계열사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 연합뉴스
웅진케미칼은 수처리 필터와 폴리에스터 섬유 등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연 매출 1조 원 이상을 올리는 알짜 업체. 지난해 매출액 1조 1104억 원, 영업이익 285억 원을 기록했다. 웅진케미칼은 특히 국내 수처리 여과막(멤브레인) 분야 1위로, 이달 초 경북 구미 사업장에 멤브레인 제작의 핵심 기술인 코팅공정 5호기를 증설해 기존 설비보다 40% 이상 생산규모를 확대했다. 매출의 85% 정도를 책임지는 섬유사업부에서는 폴리에스터 섬유를 주로 생산하며 이 회사는 휴비스에 이은 화학섬유 업계 2위 업체기도 하다. 대기업들의 집중 관심을 받는 이유는 섬유사업보다는 수처리 사업의 높은 잠재력 덕이다.
세계 수처리 관련 시장은 지난 2010년 550조 원에서 오는 2016년 75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인수 과정에서 수처리 사업부의 성장성을 두고 대기업 간 경쟁 구도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인수가는 치솟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4강 후보군들 중에서도 LG와 롯데가 좀 더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는 현재 섬유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면서 수처리 사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어서 인수 의지가 다른 기업들보다 더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수가가 올라갈수록 상대적으로 더 큰 기업들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잇따라 대형 M&A를 성공으로 이끌며 M&A 시장의 전통적 강자로 군림하면서도 무리한 가격에는 인수를 시도하지 않는 롯데의 특성을 감안할 경우, 한 배를 탔던 LG와 GS의 외나무다리 혈투가 벌어질 것이란 시나리오도 힘을 얻고 있다.
웅진케미칼 인수전 참여와 관련, LG화학 관계자는 “우리도 기존 섬유 사업보다는 수처리 사업에 관심이 더 많다”며 “인수를 통해 관계사인 LG전자와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GS그룹은 (주)GS 측이 6월 21일 조회공시를 통해 “자회사 GS에너지는 웅진케미칼 인수와 관련해 검토 중에 있으나 현재까지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밝혔지만, GS에너지 측에 확인 결과 이 회사는 다른 인수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웅진케미칼의 매각주간사인 우리·한국투자증권 컨소시엄에 LOI를 정식으로 제출했다.
LG전자는 지난 2010년 수처리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하고 10년간 5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매출 2조 원의 ‘글로벌 톱10 종합 수처리 전문기업’으로 올라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어, LG화학의 웅진케미칼 인수 시 그룹 내 수처리 사업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맞서는 GS에너지도 GS건설이 지난해 세계 10대 수처리 기업인 스페인의 ‘이니마’를 인수한 바 있어 시너지 효과가 가능하다.
사업 외적으로도 두 그룹의 웅진케미칼 인수 명분은 또 있다. LG그룹은 그동안 웅진그룹과 사업 부문 충돌 및 상표권 분쟁 등으로 껄끄러운 관계를 형성한 바 있어 웅진케미칼 인수를 통해 자존심 회복에 나설 수 있고, GS 측 인수 주체인 GS에너지에는 최근 그룹 내에서 적극적인 영향력 강화에 나서고 있는 오너 3세 허용수 부사장이 있어 이번 인수전을 성공으로 이끌 경우 허 부사장의 위상은 더욱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두 기업은 지난 2004년 7월 오랜 동업 관계를 정리하면서도 소위 ‘신사협정’을 맺어 분가 시점부터 5년간 상대의 주력 분야에 대한 교차 사업을 지양하기로 암묵적 합의를 본 바 있다. 신사협정의 유효기간이 이미 지났지만, 양측은 그동안 느슨하게나마 신사협정을 계속 유지해 오며 과거 동업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상사 및 전기자동차 사업에서 일부 겹치는 사업 영역을 형성했지만 ‘애교’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 인수전 참여가 지난해 11월 LG상사가 GS리테일 지분 11.97% 전량 매각을 통해 LG와 GS 간 지분 관계가 완전히 청산되고 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양 그룹이 이번 인수전을 계기로 완전 경쟁 체제에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양측이 오랜 의리를 바탕으로 경쟁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 왔지만 시장 선점이 중요한 미래 신사업 앞에서까지 경쟁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사돈 양반, 내 아들 사람 좀 만들어 주소”
1946년 부산에서 사업을 막 시작한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에게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뜻밖의 손님이 찾아 왔다. 바로 고향의 만석꾼이자 사돈인 허만정 씨였다. 허 씨가 3남 허준구 전 LG건설 명예회장을 구인회 창업주 손에 맡기면서부터 현재의 LG그룹은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이듬해인 1947년 락희화학공업(현 LG화학)을 세우면서부터 본격 시작된 양측의 끈끈한 사업 파트너로서의 유대 관계는 이후 반세기 이상 지속됐다.
하지만 ‘형제끼리도 동업만은 하지 말라’, ‘친구와 멀어지고 싶으면 동업을 하라’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로 우리사회에서 동업은 금기시된다. 35건 중 1건도 성공하기 힘들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이런 점에서 허씨와 구씨 집안의 동업 성공 사례는 우리나라 근현대 기업사와 재벌사에 모범이 될 만한 대표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이밖의 동업 성공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그룹도 창업 초기 여러 파트너들과 동업 관계를 형성했다. 고 이병철 창업주는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와 설탕사업을, 구인회 LG 창업주와도 방송 사업을, 조홍제 효성 창업주와도 섬유 사업 등을 진행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갈등을 빚어 결별하고 만다. 이런 가운데서도 냉철한 성격으로 잘 알려진 이 창업주는 항상 결별 과정을 잘 마무리 지어 승승장구했고, 현재 글로벌 삼성의 초석을 다졌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