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 비리 의혹을 받는 무그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로 일본 독일 영국 등 세계 13개국에 진출해 있는 세계적 정밀무기체계 부품회사다. 우리나라에는 1986년 진출해 현대모비스 포스코 등 생산시설에 모션제어설비를 납품해 왔다.
삼성테크윈은 K-9 자주포를 생산하며 한국무그와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K-9 자주포는 1989년부터 약 10년 동안 기술개발을 해 국내 독자 기술로 제작한 국산 무기 중 하나로 2000년부터 실전배치 되고 있다. 가격은 한 대당 39억 원 수준. 삼성테크윈은 1998년 12월 K-9 자주포의 주요 부품인 서보실린더(포탄장전장치)를 한국무그로부터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검찰 자료에 따르면 한국무그는 2008년 11월경까지 거의 10년간 계약을 유지해오며 서보실린더를 납품하면서 조작된 수입원장 등을 제출하는 방법으로 제조원가를 부풀려 약 55억 8500만 원을 가로챘다고 한다. 납품한 서보실린더 700개가량에서 개당 650만~1250만 원의 부당이득을 취했고 그 결과 부품 가격이 적정가보다 두 배가량 부풀려졌다는 것.
이 사건은 당초 지난 6월 K-9 자주포 부품 원가 과다산정 제보를 받은 국민권익위원회가 방사청 감사관실에 통보했지만 제대로 감사가 이루어지지 않자 검찰이 단서를 잡아 수사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K-9 자주포와 관련한 업무를 담당했던 한국무그, 삼성테크윈, 방사청 직원 28명을 조사했고 결국 지난 3일 한국무그의 이 전 이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수사 중인 사건이기 때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검찰의 공식적인 입장이지만, 검찰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무그 측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정산 과정에서 구성부품 2개의 증빙자료인 수입신고서와 세금계산서를 조작해 제출한 사실을 자백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전직 한국무그 직원 진술 및 조작된 서류 등 보강증거를 상당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향후 무그 아태지역 본부장 등 외국인 경영진의 지시·공모 등 가담 여부를 추가 확인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한국무그가 수입신고서에 부품 단가를 정해서 제출해 우리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며 “방사청에서 정한 가격에 맞게 부품을 제공하는 걸로만 알았지 가격을 부풀려 받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사업인데 삼성테크윈이 외국계 기업의 서류만을 믿고 납품을 받은 부분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납품비리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것과 관련해 내부직원 공모설까지 등장했던 것. 이와 관련,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한국무그가 치밀하게 준비해 서류를 속여가며 납품비리를 저지른 것이라서 우리도 몰랐다”며 “내부 직원의 공모 가능성은 없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납품 가격 관리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방사청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며 계약자인 삼성테크윈 측에 2배 환수 조치 등을 할 계획이다. 비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한국무그는 당연히 부적격 업체로 지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비리를 막지 못한 부분에 대해 이 관계자는 “구두를 사는데 구두끈 가격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처럼 부품을 제공하는 업체에서 단가 영수증을 가지고 오면 우리는 그것을 바탕으로 전체 가격을 산정하고 있다”며 “이번 경우는 마음먹고 영수증을 위조한 경우라서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해명했다.
방사청의 환수 조치 계획에 대해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건인 만큼 환수 조치 및 부적격 업체 등의 대응은 법원의 판결을 보고 결정할 일”이라고 말을 아꼈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한국무그 관계자도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검찰이 수사 중인 단계에서 우리 입장을 말할 수 없다”며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나중에 입장을 따로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번 납품비리 사건으로 삼성테크윈은 매출 비중이 55.1%에 달하는 방위산업부문이 암초에 걸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삼성테크윈은 방산부문에서 꾸준한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K-9 자주포 등을 생산하는 특수사업부의 매출이 크게 증가했고 항공기엔진 등을 생산하는 파워시스템사업부도 꾸준히 몸집을 키우고 있다. 2009년 9월 말 기준 삼성테크윈의 방산부문 한 해 매출은 2조 원에 달하고 있다.
허나 방위산업은 사업안정성이 높은 대신 국책사업으로 성장성에 한계가 있다. 이에 삼성테크윈은 올해 디지털카메라사업을 삼성전자에 넘기는 대신 CCTV 부문을 가져와 감시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감시장비사업은 기존 삼성테크윈의 사업과 연계해 군사·의료 분야의 정밀기기 등으로 사업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삼성테크윈이 이처럼 방위산업에 감시사업의 동력을 달고 질주를 시작하려는 때에 납품비리 사건이란 악재가 불거져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협력업체의 부품 가격 등을 철저하게 관리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