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니아들만 찾던 쌀국수에 한국적인 맛을 더해 대중화시킨 박규성 사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호아빈’(www.hoabinh.co.kr)을 운영하고 있는 오리엔탈푸드코리아㈜ 박규성 사장(45)은 이러한 과정을 다름 아닌 쌀국수에 적용해 성공을 거뒀다. 한약재를 사용한 육수로 쌀국수 특유의 강한 냄새를 잡아 우리 입맛에 맞게 재탄생시킨 것.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가맹점 80여 개를 개설, 베트남 쌀국수 업계의 샛별로 떠오른 그의 쌀국수 국물처럼 시원한 성공스토리를 들어봤다.
“이전의 쌀국수는 마니아에 의해, 마니아를 위해 판매되던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이제는 어린이와 중장년층까지 그 폭이 다양해졌습니다.”
자신도 지독한 쌀국수 마니아라고 소개하는 박규성 사장은 사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공학도 출신이다. 해장을 위해 즐겨 먹던 쌀국수를 ‘마니아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을 수 있도록 대중화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품은 게 쌀국수 전문점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한다.
그는 사실 쌀국수 전문점이 첫 사업 경험은 아니라고 고백했다. 졸업 후 전산전문학교에 몸을 담아 15년 동안 운영을 도맡아 해오다 게임 소프트웨어 유통으로 창업시장에 ‘살짝 발을 담근’ 경험이 있단다. 1990년대 중반, ‘게임왕국’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게임 팩 판매 유통 사업을 했던 것. 40여 개 매장을 개설할 정도로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지만 게임이 유해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시쳇말로 ‘한방에 훅 가버린’ 것.
“4년 동안 밤낮없이 일하며 만든 사업체였는데 한순간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투자금 5억 원을 모두 날린 뒤 남은 것은 3700만 원의 전세금밖에 없더군요.”
거처를 경기도 일산으로 옮긴 뒤 쌀국수로 재기를 결심한 그는 곧바로 육수 개발에 들어갔다. 하지만 거부감을 일으키는 독특한 향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온갖 재료를 넣어 끓여서 맛을 보고 버리기를 수십 차례. 모든 작업이 거주하던 오피스텔에서 이뤄지다 보니 쌀국수 특유의 향이 온 건물에 퍼져 입주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그는 이런 문제를 역으로 이용했다. 만든 음식을 입주자들에게 대접하는 방식으로 맛을 테스트해본 것. 시간이 지나면서 불평하던 입주자들은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며 노력하는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재료로 번쩍 떠오른 것은 한약재였다. 정향 팔각 계피 등 11가지 한약재를 적정 비율로 혼합한 결과 강한 향신료의 향을 잡을 수 있었고 동시에 몸에 좋은 웰빙 쌀국수가 탄생할 수 있었단다.
2년간의 육수 개발이 끝난 2003년 10월, 경기도 일산의 상업지구 라페스타에 82㎡(25평) 규모의 쌀국수 전문점을 열었다. 창업 자금이 충분치 않아 3층 매장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무엇보다 쌀국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 3개월 동안 수천 장의 무료 시식권을 뿌렸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손님들은 직접 음식을 맛보고 나더니 반응이 달라졌단다. 3개월이 지나면서 개점 휴업상태였던 점포는 일매출 30만 원을 기록했다. 다시 3개월이 지나면서 일매출은 100만 원을 넘어서는 것은 물론, 식사시간이면 줄을 서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이렇게 1호점이 성공을 거두면서 자신감이 생긴 그는 6개월 뒤인 2004년 3월, 서울시청 인근에 100㎡(30평) 규모의 두 번째 매장을 오픈했다. 장사가 안 되기로 유명한 자리였지만 투자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그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런데 쌀국수 전문점 개점을 알리는 플래카드를 떼기도 전에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일산점에서처럼 수천 장의 무료 쿠폰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뿌리기도 전에 손님이 몰려들기 시작한 겁니다. 결국 전단지는 뿌려보지도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지요.”
일산점과 달리 시청점은 문을 열자마자 월 매출 9000만 원을 기록했다. 시청점의 성공은 곧바로 가맹사업으로 이어졌다. 이용객들이 가맹점 개설을 문의해 온 것. 이에 그는 다른 쌀국수 전문점과 차별화를 선언하며 가맹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당시 다른 쌀국수 전문점은 165㎡(50평) 이상의 규모로 최상급 입지에만 개설이 가능한 까다로운 조건이었지만 그는 문턱을 낮췄다. 소규모 점포로 창업이 가능하도록 하고, 7000∼8000원으로 다소 높은 쌀국수 가격도 5000원대로 낮춰 가격경쟁력을 갖췄다. 내린 가격에도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 쌀국수의 핵심 재료인 육수를 공장에서 생산, 완제품으로 공급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부분의 쌀국수 전문점은 가맹점에 레시피를 제공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결국 운영자가 8시간 이상 매장에서 직접 육수를 끓여야 하는데, 인건비는 물론 많은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지요. 점심 장사를 위해 전날 1차 육수 작업을 하고, 다음날 아침 7시에 매장에 나와 11시까지 육수를 끓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육수를 완제품으로 공급하기까지 1년여의 연구 기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인건비와 시간의 절약 등 편의성은 물론 맛의 표준화까지 가능해지면서 운영자의 만족도는 더욱 높아졌다고.
인테리어도 차별화했다. 쌀국수 전문점은 노란색 간판이 대세였지만 그는 전혀 다른 초록색을 선택했다. 이는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대나무의 초록색 잎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매장에는 베트남 풍경 사진과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의 사진을 배치, 베트남 현지 느낌이 들도록 했다.
그는 지속적인 메뉴 개발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기존 쌀국수로는 2% 부족한 남성 고객을 위해 내놓은 ‘매운해산물쌀국수’는 이제 호아빈의 대표 메뉴가 됐다. 이후 출시한 굴쌀국수 샤브쌀국수 조개쌀국수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제조시설뿐만 아니라 유통·물류 시스템도 갖추면서 지난해에는 제2 브랜드 ‘멘무샤’를 출시했다.
멘무샤는 일본 라멘 전문점인데 라멘 역시 현지인이 즐기는 특유의 느끼한 맛을 줄이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내는 데 중점을 뒀다고. 라멘은 쌀국수보다 훨씬 더 생소한 시장이지만 쌀국수가 그랬던 것처럼 단골과 마니아층을 공략하면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멘무샤는 현재 호아빈 1호점 자리에 들어선 멘무샤 1호점을 비롯, 9개의 점포가 개설됐다. 영등포 경방타임스퀘어점의 경우 월매출 9000만 원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오리엔탈푸드코리아㈜ 매출액은 100억 원을 넘겼다. 그리고 박 사장은 지금 중국의 매운 탄탄면을 주 메뉴로 하는 제3 브랜드를 계획하고 있다. 최고의 면 전문기업을 꿈꾸는 그가 또 어떤 이국적이면서도 한국적인 맛을 선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