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취업포털 인쿠르트가 직장인 118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직을 경험한 10명 중 6명이 ‘전 직장으로 돌아갈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직을 가슴속에 품고 있지만 정작 이직 후에는 이전 직장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소리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K 씨(32)도 그랬다. 입사 3년차 때 다른 곳으로 갔다가 다시 이전 직장으로 돌아온 것.
“이직하기 전에 실적이 좋아서 인정받고 있었고 동료들과의 사이도 괜찮았어요. 떠날 때도 다들 더 나은 조건이니까 가겠지 하고 이해해줬거든요. 그런데 막상 이직하고 보니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연봉 면에서 약속했던 부분이 100% 이행되질 않았고, 낯선 환경에서 능력을 펼치기가 어렵더군요. 고민도 많이 하고 갈등도 하다가 결국 ‘유턴’ 쪽으로 맘을 먹게 됐습니다.”
K 씨는 “이직 경험을 한 번 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고 털어놓았다. 현재의 직장을 다니면서 뭔가 오점을 남긴 것 같아 껄끄럽긴 하지만 겪어볼 만한 일이었다고. 그는 “만약 이직 경험이 없다면 계속 다른 회사에 눈길이 갔을 것”이라며 “지금은 오로지 이 회사와 일에 집중할 수 있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많은 직장인들이 K 씨처럼 경제적 업그레이드를 이유로 이직을 하지만 O 씨(여·33)의 경우는 달랐다. 정신적인 만족감을 위한 ‘다운 그레이드’를 선택한 것이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전문직으로 꽤 높은 연봉을 받고 근무하고 있었어요. 직장생활을 일찍부터 했기 때문에 경력이 인정돼 최근까지 과장급 월급을 받고 다녔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돈이 다가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야근을 밥 먹듯 하고 남들 쉬는 주말에 일이 몰렸다가 다들 일하는 평일에 쉬는 날이 주어지는 때가 많았어요. 팀 내 책임자로서 느끼는 부담감도 갈수록 커져갔죠. 정상적인 사생활을 영위할 수도 없는 데다 건강도 부쩍 나빠져서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좀 더 여유 있는 공기업형 민간기업으로 옮겼어요.”
O 씨는 현재의 회사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물론 이전 회사보다 연봉은 낮아졌지만 시간적인 여유도 많이 생겼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그는 “삶의 질이 높아졌기 때문에 경제적인 여유가 줄었다고 해도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며 “이직의 이유를 단순히 돈에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직의 기준을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만족도는 매우 달라진다. 하지만 ‘이상’을 찾아 가더라도 막상 현실이 생각과 달라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C 씨(33)는 2년 전 완전히 다른 업계로 이직을 했다가 다시 현재의 직장으로 돌아왔다. 정말 꿈꾸던 곳에 발을 디뎠지만 현실은 매우 달랐다고.
“사범대를 나와서 교사를 하고 있었어요. 교직생활 1년이 지날 때쯤에 진로를 완전히 바꿨어요. 어릴 때부터 기자가 꼭 하고 싶었거든요. 주위에서는 다들 미쳤다고 말렸지만 기자로서의 사명감을 느끼면서 ‘살아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관련 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공채준비를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일단 전문 아카데미에서 짧게 경험을 쌓고 인지도 있는 인터넷 매체에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참 다르더군요. 제가 꿈꾸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고 굉장한 스트레스를 요하는 직업이었어요. 서서히 몸과 마음이 지쳐가면서 결국 교사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C 씨는 “마음 속에 항상 갖고 있던 꿈이 사라져 처음에는 허무했지만 지금은 만족한다”며 “이직을 계기로 다른 직업의 실상에 대해서 알게 된 것만으로도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닝(e-Learning·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교육) 업체에 다니는 Y 씨(34)는 누군가 이직에 대해 상담한다면 정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 스스로가 이직에 실패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연봉 등의 조건도 나았지만 이직한 가장 큰 이유는 개발자로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회사였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힘들더라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은 저 혼자 아무리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동료들은 저와 생각이 달랐거든요. 이직 초기엔 의욕적으로 이런저런 의견도 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다른 동료들 눈에는 좀 ‘나대는’ 것으로 보였나 봐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마치 혼자 잘난 맛에 사는 것으로 비쳤던 거죠.”
Y 씨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동료들과의 불화를 겪으면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 안을 내도 딴죽을 걸거나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은 데다 한번 벌어진 틈은 좀체 좁혀지질 않아 고민이 많다. 그는 “전 직장은 회사의 비전이 좀 약했지만 동료들끼리 다 같이 걱정하면서 타개책을 마련해 한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직 후에는 회사에 가도 즐겁게 웃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털어놓았다.
현 직장이 이렇게 괴로울 경우 이직은 전화위복이 된다. M 씨(31)는 1년 전 이직을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갔었지만 도대체 왜 그 고생을 해서 입사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만큼 업무가 생각과 너무 달랐어요. 그때는 경솔하게 사직서를 내고 나왔는데 그 뒤로 계속 취업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초조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일종의 낙하산으로 한 기업에 입사했습니다. 근 3년을 일했는데 단 한 번도 마음 편했던 날이 없었어요. 같은 시기에 입사한 동기들에 비해 스펙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각종 굵직한 행사에는 배제되더군요. 낙하산이라고 나태하다고 할까봐 더 부지런을 떨었는데 결국 사표를 냈습니다. 지금 직장은 온전히 제 힘으로 들어왔는데 마음이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 제 능력을 인정해 준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일하게 되네요.”
많은 직장인들이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해 이직을 고려한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 이직할 경우 후회할 확률이 높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 관계자는 “직장에 대한 불만의 해결방안으로 단순히 이직을 결정하는 것은 성급한 행동”이라며 “만약 이직을 결정했다면 경제적인 부분만 비교하지 말고 이직의 뚜렷한 이유를 정한 후 이직하려는 회사의 분위기나 복리 후생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다영 프리랜서 dylee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