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총이 노사 선진화 방안 단계적 실행을 표명하자 현대기아차와 삼성의 희비가 엇갈렸다. 사진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왼쪽)과 이건희 삼성 회장. | ||
지난 3일 현대차 관계자는 “경총이 회원사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회원사와의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인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어 더 이상 회원사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경총은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노사관계만을 특화 분리한 조직으로 현재까지 노사관계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현대차의 강경한 목소리는 경총이 최근 ‘복수노조는 일정기간 유예하고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는 사업장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행한다’는 입장을 보이자 폭발했다. 현대차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이 예정대로 내년부터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계속 강조해 왔다. 경총도 지난 11월 말까지 열린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와 관련해 내년부터 전면 금지를 주장했다.
그런데 지난 11월 30일 한국노총의 대국민선언 이후 4자회의에서 조합원 5000명 이하 사업장은 이를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바꾸자 현대차의 원성을 샀던 것이다. 이번 노사정 합의로 전임자 급여지급이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친 뒤 7월 1일부터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로 실시되자 현대차의 강수 카드가 성공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 관계자는 “타임오프제 도입이 노사관계 악화에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면서 “합의안을 검토해 보겠지만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전면시행이 우리의 공식적 입장”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복수노조 허용을 반대하던 삼성그룹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자 현대차가 경총에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일요신문> 908호 보도). 지금껏 현대차는 복수노조 허용보다는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조항이 더 이상 유예되지 않도록 다각적인 방면에서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지난해 노조 전임자를 비롯해 금속노조, 민주노총 등의 상급단체 파견자 등 총 217명에게 연간 137억 원의 급여를 회삿돈으로 지급했다. 기아차도 144명의 전임자에게 87억 원을 지급했다. 연간 전임자 급여로만 224억 원을 지출하다보니 현대차로서는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가 유예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회삿돈이 아닌 조합비로 노조 전임자들에게 월급을 준다면 노조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현대차로서는 전임자 급여지급을 금지하면 경제적 부담으로 다수의 노조가 생성되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윤여철 현대자동차 노무총괄 부회장이 사석에서 중도든 강성이든 노조는 노조일 뿐이라고 말한 것은 현대차의 노조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 노조의 한 관계자는 “회사에서 조합비만으로 전임자 급여를 지급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돈을 지원하며 노조 길들이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입장은 현대차와 다르다. 경총이 복수노조 허용 유예에 무게를 두자 삼성과 같이 노조가 활성화되지 않은 기업은 ‘한시름 놓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 삼성은 ‘1사 1노조’ 원칙을 지키며 철저히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만약 노조가 만들어질 분위기가 탐지되면 미리 사측이 ‘어용노조’를 만들어 버려 타 노조의 형성을 막고 있다는 것.
이처럼 삼성이 노조를 통제하는 것에만 익숙해 다수의 노조가 만들어지면 관리 면에서 많은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되자 복수노조 허용 유예를 강력히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현대차의 경우 강성 노조와의 오랜 교섭 노하우를 가지고 있고 이미 노조 내의 여러 가지 계파와 상대해왔기 때문에 복수노조 허용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현대차의 행보에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박유기) 고위 관계자는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조항이 내년에 시행될 경우 총파업을 불사하겠다”며 “중도 노선을 표방한 현대차 노조는 물론 모든 조합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