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통합 KT 출범식을 갖고 글로벌 ICT(정보통신기술) 리더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이석채 회장. | ||
KT는 지난 9일 노사협의회를 갖고 이달 말까지 특별 명퇴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15년 이상 근속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며 명퇴자에겐 퇴직금과 추가 위로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명퇴자 수는 3000명에서 3500명 사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3만 8000명가량인 전체 인력의 10% 정도가 조금 못 되는 수준이다. KT 사정에 민감한 라이벌 통신사들을 비롯한 재계 정보통들은 이번 명퇴 명단에 포함될 인사들이 퇴직금과 위로금을 포함해 개인당 평균 1억~2억 원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KT 명퇴 소식이 흘러나온 지난 10일 유진투자증권은 분석보고서를 통해 “명예퇴직자가 2000명, 1인당 퇴직금 1억 5000만 원일 것으로 가정하면 3000억 원의 퇴직 비용이 발생한다. 당사 추정 4분기 영업이익이 3182억 원이라는 점에서 명예퇴직자 수가 증가하는 경우 영업적자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향후 실적에 대해선 “내년부터 비용절감효과 등으로 인해 실적 개선세가 지속될 것”이라 전망했다.
KT의 인력 감축은 지난 6월 KTF와의 합병 이후로 줄곧 예견돼 온 일이었다. KT는 KTF와의 합병법인을 출범시키면서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았다. 합병을 통해 업무가 겹치는 직원 감축이 예상됐지만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부르짖는 상황에서 정부 입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KT 수뇌부가 선뜻 구조조정에 나서지 못한 것으로 관측됐다.
KT에 대한 외압 논란을 줄곧 제기해온 재계 관계자들은 “KT와 정부가 사전에 명퇴와 관련된 충분한 교감을 나눴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아울러 일각에선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위로금 액수가 더 크기에 노사협의회 타결이 용이했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이번 인력 감축이 이석채 회장의 조직 장악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도 뒤따른다. KT는 올 초 이석채 회장 취임 직후 영입된 서울고검 검사 출신 정성복 윤리위원장(사장)을 앞세워 강도 높은 내부 감사를 실시해왔다. 이 과정에서 KT 본사와 협력업체 직원들의 비리를 대거 적발해냈다. 경영진의 고발로 검찰이 수사를 벌여 전·현직 임직원 147명의 부정 거래 혐의가 밝혀지기도 했다. 조직 내에 만연해 있던 부정부패를 엄단한 동시에 KT 출신이 아닌 이석채 회장을 ‘낙하산’으로 폄하해온 일부 세력에게 제대로 ‘화력시범’을 보인 셈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암묵적 동의하에 이뤄지는 인력감축을 계기로 이석채 회장 체제에 반대해온 인사들 중 일부가 회사를 떠나게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구현 KT노동조합 위원장은 지난 10일 노조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명퇴를 빌미로 현장을 들쑤시고 머릿수 채우는 식으로 강제 명퇴를 종용한다면 노조가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KT 내에선 노조가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KT에서 매년 행해온 정기명퇴에 비해 조건이 좋다는 점 또한 노사가 명퇴 시행 합의에 큰 잡음 없이 도달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 명퇴 실시에 이어 KT는 700명가량의 신규인력을 채용할 계획으로 알려진다. 고액 연봉자들의 빈자리를 젊은 인력으로 채우면서 조직 체질개선을 도모하는 동시에 청년실업 해소 명분을 내걸 수도 있게 된 셈이다.
한편 업계 라이벌인 SK텔레콤과 LG텔레콤에선 KT의 이번 명퇴 결정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특히 내년 1월 1일 LG텔레콤-데이콤-파워콤 합병법인 출범을 앞두고 있는 LG그룹 내에선 중복부서 통폐합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KT 명퇴 절차 순항 여부가 KT 사장 출신 이상철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수장으로 앉게 될 통합법인 LG텔레콤 내부에 불어 닥칠 감원 혹은 인력 재배치 바람의 시금석이 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SK텔레콤 내에서도 연말 조직개편설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중이다. KT를 휘감기 시작한 명퇴 바람이 SK와 LG에 불어 닥칠 칼바람의 단초가 될까에 주목하는 시선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