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시 건설현장. | ||
정운찬 총리 취임 이후 불거진 세종시 논쟁이 이명박 대통령의 강력한 수정 방침 천명으로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러한 논쟁을 가슴 졸이며 쳐다보는 것은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법에 따라 세종시로 이전해야 할지도 모르는 과천 관가 공무원들이다. 그런데 최근 세종시 수정을 위해 구성한 민관합동위원회가 행정도시 대안으로 건의한 내용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라고 알려지자 공무원들이 수군거리고 있다. 세종시에 정부부처 대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라는 이름으로 상당한 메리트를 안겨주려는 움직임에 왜 공무원들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국제’라는 말이 들어간 정부 프로젝트치고 제대로 된 일이 거의 없다는 불안감이 반영된 탓이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역대 정부치고 대형 프로젝트에 국제라는 말을 안 쓴 정부는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가장 간단한 예로 김영삼 정부 때 ‘국제화’라는 말이 얼마나 유행했나. 그런데 우리나라의 각종 규제나 기준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바뀌었나? 국제화 폼만 잡다가 정부가 외환관리를 잘못해서 국가부도 사태만 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부부처 공무원도 “국제 금융허브, 국제 물류중심, 국제 해양관광단지, 송도 국제자유도시, 제주 국제자유도시, 무안국제공항, 양양국제공항 등 최근의 사업들에도 ‘국제’ 자가 많이 붙어 있다.
하지만 이중에서 과연 이름 그대로 국제적인 금융이나 물류, 해양관광단지 등이 될 수 있는 곳이 몇 개나 될 것 같으냐”면서 “사업 그대로만 놓고 보면 큰 문제가 없거나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도 국제라는 이름이 붙어버리면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국제라는 단어 때문에 눈높이가 높아지고 사업지에 외국인이 잘 안 보이면 그것 자체가 실패처럼 돼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국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사업 중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사업은 많지 않다. 정부가 야심차게 진행 중인 송도국제자유도시의 경우 외국인 학교 설립 자체가 연기에 연기를 거듭할 정도로 국제자유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당초 올 9월 국제학교로 개교 예정이었지만 국제학교 입학이 가능한 외국인이 적어 개교가 연기됐다. 정부가 국제학교 입학 내국인 비율을 완화하고 나선 뒤에야 일이 조금씩 진척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국제학교 운영을 맡은 외국 학교법인은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외국인 병원 설립은 법 개정이 지연되는 데다 국내 병원의 반발이 커 무산됐고, 주거시설도 아파트 분양에 치우쳐 내국인만 몰려들었다.
제주도가 추진 중인 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 중 중문관광단지 확충 사업은 한국관광공사의 민영화 추진과 부지매각으로 시행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공항자유무역지대는 관련 중앙부처가 부정적 입장인 데다 신공항 건설과 맞물려 수정론마저 나오고 있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은 5년 전에 외국인 거주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명지국제신도시 계획을 수립했으나 올해 들어서야 그린벨트 해제 과정에 들어간 상태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해온 국제금융허브는 각종 금융 관련 규제가 여전한 데다 전문 인력 부족과 법률 회계 정보네트워크 등 금융 인프라 미비, 열악한 생활환경 등으로 헛바퀴만 돌고 있다. 오히려 상하이와 홍콩, 싱가포르, 도쿄 등 다른 아시아 주요 도시들이 금융허브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정치적 수혜 차원에서 이뤄진 무안과 양양 국제 공항의 경우 면세점이 철수한 것은 물론, 국제선은커녕 국내선 운항도 손에 꼽을 정도로 위기에 처했다.
정부과천청사의 한 공무원은 “세종시의 경우 과학비즈니스벨트 정도면 충분한데 국제라는 단어를 첨가하면서 실패 가능성이 커진 것과 마찬가지다. 수조 원을 쏟아 부은 인천 송도도 국제자유도시로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데 공항이나 항구가 전혀 없는 세종시에 외국인이 몇 명이나 올 수 있겠나. 아무리 국내 기업들이 옮겨가도 외국 기업이 투자하지 않으면 국제과학비즈니스 벨트는 실패가 될 수밖에 없어 위험도가 크다”고 말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