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 ||
SK건설은 지난 11월 초에 주택부문에 대한 명퇴를 실시했다고 한다. 주택사업부문 700여 명 중 100명가량이 명퇴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 사업부 인력의 14%가량을 내보낸 셈이다. 이에 SK건설 측은 “명퇴를 실시한 건 맞지만 100명까진 아니고 두 자릿수 수준”이라고 밝힌다. 퇴직금은 물론 위로금까지 지급됐으며 차질 없이 잘 마무리됐다는 입장이다.
올 한 해 SK건설은 글로벌 경기침체에 이은 건설경기 불황 여파를 비켜가지 못한 채 명퇴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11월에 공시된 SK건설 분기보고서(3분기) 재무제표 내역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올해 3분기까지 SK건설의 매출액은 2조 6555억 원이다. 아직 4분기가 남아있지만 지난 2년간 매출 4조 원을 웃돌았던 것과는 확연히 대조된다. 영업이익도 크게 줄었다. 올 3분기까지 영업이익은 589억 원. 지난해 2140억 원, 2007년 2114억 원과 비교해볼 때 올 연말까지 합산한다 해도 큰 하락폭이 예상된다.
SK건설이 올해 3분기까지 올린 당기순이익은 373억 원이다. SK건설은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당기순이익 1000억 원 이상을 기록해왔다. 올 3분기까지 주당순이익도 지난해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한 상태다. 명퇴 배경에 대해 SK건설 관계자는 “경기불황이 원인”이라면서 “현재 해외수주 상태가 좋기 때문에 실적 문제로 명퇴를 실시했다고 보진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SK건설은 올해 해외건설 수주 40억 달러 이상을 기록해 자사 해외건설 진출 사상 최대실적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28억 달러를 수주한 것과 비교해 약 12억 달러가 증가한 수치다. 그런데 올해 기록한 해외 수주 금액 중 87%가량인 35억 달러가 플랜트부문에서 발생했다. 플랜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돼 있는 주택부문이 이번에 감원 칼바람을 맞은 셈이다.
SK건설의 대규모 명퇴 실시가 주목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회사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사촌동생인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의 이해관계가 묘하게 얽혀 있는 데 있다. 지난 6월 말 SK그룹 지주회사 SK㈜는 SK케미칼이 보유하고 있던 SK건설 지분 811만 8000주(지분율 34.1%)를 인수했다. 주당 5만 1000원에 사들였으니 총 인수금액이 4140억 원이었던 셈이다.
이전까지 SK건설은 최창원 부회장의 SK케미칼 자회사였다. SK케미칼 계열은 지난 2007년 SK그룹의 지주회사제 전환 발표 당시 지주회사 체제에서 제외돼 최창원 부회장의 분가 관측을 부추겨 왔다. 최 부회장의 SK케미칼 지분율이 10.18%, SK케미칼 자사주가 13.82%에 달해 언제든지 계열분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지분 이전을 통해 SK그룹 지주회사 체제로 편입된 SK건설은 이전까지 SK케미칼 계열에서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던 회사였다. SK케미칼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 864억 원, 영업이익은 744억 원, 당기순이익은 66억 원으로 SK건설 실적에 한참 못 미친다. SK케미칼에 효자 노릇을 해온 SK건설 지분이 SK㈜에 넘어간 배경은 많은 재계 관계자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SK케미칼 측은 “SK건설 지분 매각 대금으로 재무구조 개선과 동시에 투자 여력을 확보할 것”이라 밝혔다. SK㈜ 측은 “SK건설의 지주회사 체제 편입을 통해 기존 사업회사들과의 교류 강화로 자원개발 등 미래성장사업 발굴에 나설 것”이란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 지주회사로 편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감원 한파가 불어 닥치다보니 SK건설 주변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분 인수 당시 SK그룹 측은 SK건설의 대외신인도 상승을 예견했지만 결국 이번 명퇴 조치로 경기한파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만 셈이다. SK건설은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올 초 전 임직원이 임금 자진삭감을 결의했는데 연말에 와서 명퇴 바람이 불다보니 경영진 책임론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재계 일각에선 “(직원들이) 어떤 오너 경영인을 향해 볼멘소리를 해야 할지 헛갈릴 수도 있을 것”이라 입을 모으기도 한다. 현재 SK㈜의 SK건설 지분율은 30.9%. 지난 6월 지분 인수 이후 유상증자 등으로 지분 조정이 다소 있었지만 SK㈜는 여전히 부동의 최대주주다. 지주회사 체제로 들어온 만큼 최태원 회장 지배하의 계열사로 볼 수 있다.
그런데 SK건설 내에선 아직도 최창원 부회장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SK건설 지분 7.4%를 가진 개인 최대주주. 지난 6월 SK케미칼의 SK건설 지분 매각 당시 최 부회장 개인 지분은 그대로 남겨놓자 일각에선 “최 부회장이 계속해서 SK건설 경영을 쥐락펴락하려 할 것이다”, “SK건설 경영을 둘러싼 최태원-최창원 형제간의 신경전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물론 SK그룹 측은 이 같은 갈등설을 모두 부인해왔다. SK건설 측도 “(윤석경) 대표이사가 경영을 총괄하며 최 부회장은 조언만 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SK건설은 앞서 언급했듯 해외 건설 수주 실적을 꾸준히 올리면서 성장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현재 비상장인 SK건설이 훗날 상장돼 대주주에게 큰 이익을 안겨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이럴 경우 최대주주인 SK㈜의 최태원 회장과 개인최대주주 최창원 부회장의 신경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 오너의 묘한 동거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궁금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