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1월 27일 밤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출연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지난 11월 말 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 출연한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가 추진한 감세정책이 ‘부자감세, 서민증세 아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여기에는 법인세나 소득세 감세가 부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투자를 늘려 서민층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서민정책이라는 정부의 확신(?)이 담겨져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추진해온 감세 정책이 진정으로 서민들에게도 도움이 됐을까. 아니면 여당 내 일부나, 야당, 시민단체가 지적하듯이 부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갔을까.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분기별 가계동향을 분석한 결과, 금융위기 이후 부자들에게는 감세 혜택이 풍족하게 돌아간 데 반해 서민들이나 사회 약자층에게는 세금이 큰 폭으로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전 가구 중 소득 하위 20% 이하, 즉 사회 약자층을 뜻하는 ‘1분위 가구’의 올 3분기 명목 경상조세(소득세 재산세 등 직접세) 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6%나 증가했다. 1분위 가구의 경상조세는 지난해 1분기 5.9%(전년 동기 대비) 상승한 뒤 2년 가까이 계속 오르고 있다.
상속세와 증여세 및 부동산 취득 관련 세금을 뜻하는 비경상조세의 부담도 크게 증가했다. 1분위 가구의 3분기 명목 비경상조세 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2%나 늘었다. 비경상조세는 1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2% 증가했고, 2분기 역시 38.8%나 늘어난 데 이어 3분기에도 증가세가 이어졌다.
이에 반해 소득 상위 20% 이상으로, 부자들을 의미하는 ‘5분위 가구’의 경우 사상 최대 세금 감면의 단맛을 맛보고 있다. 5분위 가구는 2005년 4분기를 제외하고 그동안 단 한 번도 경상조세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줄어든 적이 없었지만 올해에는 3개 분기 연속 감소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 3.8% 줄어든 데 이어 2분기에는 12.9%가 감소했고, 3분기에는 역대 최대치인 17.3%의 경상조세 감소를 나타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소득세와 법인세 등 주요 세목에 대해 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 정책을 실시했지만 그 열매는 부유층에게만 떨어진 셈이다. 이런 현상은 자영업자들에게서 더 심하게 나타났다. 자영업자를 의미하는 ‘근로자외 가구’ 중 1분위 가구의 3분기 명목 경상조세 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0%나 증가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벅찬 데다 최근 금융위기로 더 위기에 처한 영세 자영업자들의 세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반해 5분위 근로자외 가구의 경우 경상조세 지출이 3분기 들어 27.5%나 줄었다. 돈을 많이 버는 계층일수록 세금 부담이 줄어드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한 ‘부자감세 서민증세’라는 비난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실제 경기침체로 전국에 미분양 주택이 속출하자 미분양 및 신규주택을 구입하면 양도소득세를 60~100% 감면해주는 정책을 실시했다. 또 다주택자들에게 적용되던 양도세 중과제도를 폐지해 부동산 부자들이 금융위기 동안 가격이 떨어진 집을 싸게 구입할 수 있게 해줬다. 부동산 경기는 살아났을지 모르지만 이를 통해 벌어들일 수 있었던 세금은 포기한 것이다.
정부의 감세정책은 치명적인 부작용도 낳았다. 감세정책을 펴는 와중에 예상치 못했던 금융위기 여파가 커지자 세수부족이라는 문제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정부는 올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대규모 추경과 재정 조기집행을 감행해 경제성장률을 간신히 플러스로 전환시켰지만 50조 원 가까운 재정적자를 발생시켰다.
우리나라가 감세정책을 내세워야 할 만큼 세금이 많은 나라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세금비율은 26.6%(2008년 현재)에 불과하다. 이는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21.1%)와 터키(23.5%)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치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세부담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이다.
정부나 일각에서 감세의 논리로 주장해온 것처럼 1995년∼2007년 사이 복지가 강화되면서 세금이 크게 늘어나기는 했지만 전체 세부담을 놓고 보면 OECD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여전히 낮은 셈이다. 덴마크는 세부담이 GDP대비 48.8%나 되는 등 유럽 국가들의 경우 대부분 40%대를 웃돌았다.
감세정책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자 정부는 감세 흐름을 이어가면서 창고를 채울 수 있는 묘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기업의 법인세 추가 인하를 추진하면서, 기업이 설비 등에 투자할 경우 세금을 깎아주던 임시투자세액공제는 폐지하겠다고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것도 현재 국회통과가 불투명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심사소위 논의 과정에서 소득세와 임시투자세액공제, 법인세 등 정부의 핵심 세제개편안에 대해 여야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소득층인 과표구간 8800만 원 이상에 대한 소득세 최고세율을 35%에서 33%로 깎으려던 정부 계획은 부자감세 비판과 세입 감소를 우려한 한나라당마저 반대하면서 이미 물거품이 됐다.
정부가 공언해온 법인세 인하도 여당 내부의 반발에 묶여 있다. 재정건전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법인세마저 인하할 경우 악화된 재정을 막을 길이 없다는 논리에 정부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 역시 재계는 물론 정치권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어 통과 가능성이 낮다. 재정위 소속 의원 대다수가 중소기업과 지방 기업에 대한 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내세우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돈 나갈 구멍을 막고, 돈 나올 구멍을 찾는 것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 재정부가 내년도 업무계획에서 밝힌 고소득자 해외 탈세를 막기 위한 해외예금신고제 도입, 고소득 전문직과 음식·숙박업 등 현금 수입 업종 중심의 세금 탈루혐의자 상시조사 등이 돈 나올 곳을 찾는 예다.
또 세출 구조조정 우수 부처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자율 평가결과 후 미흡 사업 3년 연속 10% 예산 삭감 등은 돈 나갈 구멍을 막는 방안이다. 하지만 돈이 많은 사람들이 내야 할 세금을 깎아준 상태에서 이 정도 정책으로 텅 빈 곳간을 채울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