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에서 터진 악재로 외국인 순매도가 이어지는 등 증시에서 투자심리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 ||
최근 미국의 상업은행 규제방침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이번에는 중국의 유동성 조절 조치들이 잇달아 나와 투자심리가 급격히 냉각됐다. 여기에 중국이 일부 시중은행에 대한 지급준비율을 올릴 것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또 중국 주요 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는 소식에 기준금리 인상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이미 긴축에 들어갔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통상 본격적인 긴축은 기준금리 인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중국은 채권시장을 통한 금리 조정 기능이 충분치 않은 만큼 지급준비율 인상이나 창구지도(대출 중단) 등도 출구전략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로 이어졌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들은 단 5거래일 동안 1조 원에 가까운 주식을 내던지는 등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외국인의 변화는 미국 정부의 은행업계 규제에 따른 유동성 축소 우려가 불거진 지난 1월 22일부터 나타났다. 22일 외국인 순매도 금액 4920억 원은 두바이 쇼크가 증시를 강타했던 지난해 11월 27일 2098억 원의 두 배가 넘는 거액. 이후 외국인들은 25일 364억 원의 순매수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6일 1940억 원어치를 순매도한 데 이어 다음날의 순매도 규모 또한 4000억 원대를 넘어섰다.
특히 지난 22일 이후 외국인들이 전기전자 업종에서 기록한 순매도 규모는 1583억 원에 이른다. 그동안 러브콜을 보냈던 전기전자 업종에 대해서도 팔자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에 따라 이달 들어 1조 7000억 원대까지 늘어났던 유가증권시장에서의 외국인 순매수 규모 또한 이날 6318억 원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이 같은 악재로 인해 코스피지수는 단 6거래일 만에 전고점 1722선에서 1600선까지, 120포인트 가까운 조정세를 보였다. 주 후반에는 장중 1600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지난주 중반 단기 급락에 따른 반등이 있었지만 그 기세는 약했고 이내 하락세로 반전했다. 구희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대외 불안요인으로 인해 안전자산 선호 쪽으로 분위기가 돌아서는 양상”이라며 “미국 경기 둔화와 기업 실적에 대한 실망도 주식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비 한국의 상대 경기가 조정을 보이면서 외국인들의 순매수 강도도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미국의 규제나 중국의 긴축 같은 일련의 상황들이 투자자금의 보수화를 초래할 수 있는 요인들인 만큼 외국인의 동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이 긴축으로 전환하면 정보기술(IT)과 자동차 등 중국의 내수 부양책에 힘입어 선전하던 국내 업종의 수출이 위축되면서 증시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승현 토러스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두바이 쇼크, 그리스 등 유럽 유동성 위기 문제가 진정되는 듯한 시점에 중국의 긴축 우려가 제기됐다”며 “당분간 투자심리는 쉽게 회복되기 어려울 듯해 주가가 반등하더라도 기술적 반등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최근 중국의 출구전략으로 국내 경상수지 흑자폭이 빠르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 보고서까지 나와 투자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위안화 가치가 상승해 국내 원화 가치도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며 “환율 하락에 따라 중국의 수출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화 가치가 상승해 수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중국의 수출 부진으로 한국 대 중국 중간재 수출이 줄어드는 간접적인 타격이 겹쳐 경상수지가 급격히 나빠진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또 “중국의 출구전략은 글로벌 캐리트레이드(차입거래) 자금의 청산을 유발하고 국내 출구전략의 압력을 세게 받아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증권사들은 우리 증시의 단기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우리투자증권과 한화증권은 코스피지수가 1500선 중반까지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미국의 규제안과 중국의 긴축 가능성으로 2월에도 투자 심리 위축 현상이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라며 코스피지수 범위를 1580∼1700으로 제시했다.
한화증권도 “단기 급락에 따른 반발 매수세가 유입되겠지만 그에 따른 반등 역시 제한적 수준에 머물러 지수가 1520∼1680 사이를 오갈 것”으로 전망했다. 윤지호 한화증권 투자분석팀장은 “2월은 코스피지수가 조정 사이클에 위치하고 있다. 간헐적 반등 국면이 출현할 수 있지만 조정은 2분기(4∼6월) 초반까지 진행될 것”이라며 “오는 4월 이후 실적개선이 확인되면 재상승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단기적 조정 국면이 지속되겠지만 증시 상승세가 하락세로 돌아서는 추세전환으로 보기는 아직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코스피지수가 낙폭과대에 대한 자율 반등도 기대할 수 있어 현재 투매에 동참할 필요는 없다는 것. 다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최근 하락 속도만큼의 가파른 상승은 나타나기 어렵다며 반등시 주식 비중을 줄이거나 낙폭이 컸던 핵심주 중심으로 압축해 대응하는 전략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판단했다.
현대증권은 최근 “2월 증시는 상승 추세가 이어지겠지만 경기선행지수의 정점 도달 여부를 비롯한 논란거리가 생기면서 시장의 변동성도 커질 것”이라며 지수 범위를 1620∼1740으로 예상했다. 서용원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예상보다 빨리 나타난 정책 리스크가 2월에도 시장을 긴장시킬 것으로 보이고 기업 실적 증가세는 다소 약화되면서 증시의 변동성을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최창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1620~1630선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지난해 11월 두바이 쇼크 여파로 급락한 이후 반등하는 과정에서 주요 지지선이었고, 경기선인 120일 이동평균선 부근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한국 경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어 악재가 사라지면 원화 가치와 주가의 반등 속도도 빠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