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9월 이명박 대통령이 소액서민금융재단에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지난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에 따른 금융위기 발발 후 청와대는 각종 경제정책과 고용정책 등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청와대 지하에 마련된 워룸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한 달에 한 번 비상경제대책회의를 국가고용전략회의로 정해서 열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개최해온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운영방식이나 정책 혼선 등에 대한 지적은 있지만 경제회복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런 빛나는 경제회복 뒤에 드리워진 ‘재정건전성 악화’라는 그림자는 걱정거리다. 이와 관련, 최근 경제계 일각에서는 비상경제대책회의 등 청와대 경제팀의 인적 구성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비상경제대책회의는 지난해 1월 8일 첫 번째 회의에서 중소기업대출 활성화 방안을 논의해 발표한 이후 굵직굵직한 사안들을 다뤄왔다. 이러한 경제정책을 통해 마이너스 행진을 하던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3분기 이후 플러스로 돌아섰다. 특히 지난해 당초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0.2%의 플러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플러스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정책 추진이 가능했던 것은 이를 뒷받침해주는 대규모 재정투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터지자 정부는 28조 4000억 원이라는 사상최대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추경을 포함한 예산과 기금, 공공기관 주요사업비 등 무려 272조 8000억 원이 정책 추진에 투입되면서 경제성장이 플러스로 돌아선 것이다. 엄청난 양의 재원이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이를 적재적소에 쏟아 붓는 데 청와대의 비상경제대책회의가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청와대 경제수석실이나 비상경제상황실에 나가있는 재정부 직원들이 대부분 돈을 쓰거나 배정하고 관리하는 데 익숙한 예산과 재정 관련 업무를 하던 직원들이어서 재원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윤진식 경제수석 밑에 있는 임종룡 경제금융비서관은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입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심의관과 경제정책국장,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 등을 거친 재정·금융통이다. 경제수석실에 있는 재정부 출신으로는 대외경제총괄과장 출신인 황건일 행정관, 경제교육홍보과장을 지낸 이형일 행정관, 재정분석과장을 거친 선우정택 행정관이 있다. 또 기획재정부로 통합된 기획예산처에서 정책기획팀장을 맡았던 방기선 행정관도 경제수석실에 있다. 다들 재정과 예산 분야에 몸담아온 이들이다.
이수원 비상경제상황실장은 재정부 재정업무관리관(차관보)을 겸직하고 있다. 이 실장은 지난 2006년부터 기획재정부 공무원노동조합이 뽑은 ‘닮고 싶은 상사’에 매년 뽑힐 만큼 전문성과 리더십을 인정받은 재정분야 전문가다. 역시 비상경제상황실에 있는 류승수 행정관은 재정분석과 사무관이다. 또 이번에 새롭게 청와대로 파견될 조규홍 예산총괄과장과 안도걸 복지예산과장도 예산실 출신으로 정부의 예산을 각 부처 사업에 배정하는 데 전문가들이다.
이에 반해 청와대에 나가 있는 재정부 출신 중 조세전문가는 조세특례제도과장을 지낸 장재형 행정관이 유일하다. 이 때문에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우스갯소리로 “청와대에 돈을 쓰는 데 전문가인 예산과 재정 출신들이 우르르 몰려있는 데 반해 돈을 거둬들이는 조세전문가는 단 한 명밖에 없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조세가 정부 세입의 원천이 되는 세금을 거둬들이는 주요 정책인 데 반해 예산이나 재정은 정부 세출의 중심이다 보니 나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 재정부 직원들이 예산이나 재정 관련 인물들이 모여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공약한 거대한 정책을 구체적 실행안으로 만들어 이를 각 부처에 보내서 추진하도록 지시한다. 이러한 정책을 만들어내는 수석실에 예산이나 재정 전문가가 갈 수밖에 없다”면서 “과거에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거대경제정책을 전문으로 하던 경제기획원(EPB) 출신들이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일을 했다. 청와대 특성상 조세보다는 예산, 재정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에도 당분간 확장적 재정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로 한 만큼 이러한 인적 구성도 유지될 전망이다.
하지만 ‘오비이락’(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이라고나 할까. 이번 정부의 씀씀이가 커진 덕분에 재정건전성은 상당히 악화됐다. 기획재정부가 잠정 집계한 2009년 국가채무는 360조 원대로 전년보다 51조 원 늘어났다. 사상최악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창고 문을 연 나라가 우리나라뿐이 아니라는 점은 위안이지만 최근 그리스나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을 보면 상황이 만만치 않다.
이들 국가들도 금융위기 파고를 넘기 위해 재정확대를 폈지만 악화된 재정적자를 막을 길이 없어 위기에 처한 상태다. 이들 국가의 위험도가 높아지면서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지역) 전체에 대한 신뢰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유로존 국가들의 국가채무 위험도가 증대되면 유럽과 밀접한 관계인 미국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면 우리나라도 후폭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각국에서 최근 정부부채를 줄이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재정적자 문제로 인해 지난 4일 전세계 증시가 폭락했고 다음날 우리 증시도 코스피지수가 50포인트 가까이 추락, 1567로 마감했다.
재정건전성 관리는 향후 경제 성장이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경제가 선진화할수록 성장률은 하락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과거처럼 물량공세로 성장률을 높일 수 없는 탓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도 하락세다. 낮은 성장률로는 급속히 늘어난 국가채무를 줄이는 것은 어렵다. 현재 정부가 마련한 재정건전성 회복 로드맵도 경제성장률이 5%를 유지할 때 가능하기 때문에 경제전문가들은 사실상 실현되기 어려운 계획이라고 지적한다.
또 유럽발 금융위기와 미국 및 중국의 긴축 등으로 경제 침체가 다시 올 경우 재정확장 정책을 펴기 어렵다. 곳간이 비어 있으니 쌀을 퍼주고 싶어도 퍼줄 쌀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청와대에 조세 전문 관료들을 불러들여 재정건전성을 맞추는 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권 초기에는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서, 금융위기 발생 직후에는 정부의 각종 사업과 일자리 만들기 등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서 재정과 예산 전문가들이 많이 필요했다. 또 정권 중반기에도 각종 사업의 동력을 잃지 않도록 이들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부가 현재 국가부채나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고, 또 2013년까지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겠다고 밝힌 만큼 조세 전문 관료들도 청와대에 받아들여 세입과 세출을 맞추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