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 관계자가 지난 3일 삼성전자의 반도체 핵심기술이 하이닉스로 흘러들어간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 사건이 매각작업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연합뉴스 | ||
하이닉스 주주협의회 주관은행인 외환은행은 지난 1일 주요 주주단 운영위원회를 열어 지난 1월 29일 마감한 인수의향서 접수기간을 설날 연휴 전인 12일까지 2주일 연장하기로 했다. 29일까지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하이닉스 채권단은 2주 연장을 통해 기업들에게 충분한 검토의 시간을 주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때 채권단 측이 특정 기업을 상대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시각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한국경제TV>는 지난 2일 보도를 통해 ‘GS·한화를 대상으로 최종 조율을 진행하기 위해 인수의향서 접수 기간을 2주 연장한다’는 하이닉스 주주협의회 내부 문건 내용을 공개했다. 인수의향서 추가 접수 기간을 마련하고 이들 후보 기업들과 막바지 협상을 통해 하이닉스 매각작업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인수 후보로 지목된 GS와 한화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펄쩍 뛴다. 지난 2일 오후 유가증권시장본부는 GS와 한화를 상대로 하이닉스 인수 추진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고 다음날인 3일 GS·한화는 나란히 ‘하이닉스 인수 추진 계획이 없다’는 답변 공시를 냈다. 하이닉스 인수 추진설에 대해 GS 관계자는 “내부에서 전혀 검토된 바 없으며 반도체 사업에 큰돈이 들어가는데 굳이 우리가 인수해서 일을 벌일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화 측도 “내부에서 전혀 논의된 바 없는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나도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외환은행 측도 “인수의향서 제출시한이 12일까지인 만큼 그때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며 “실제로 (GS·한화와) 그런 논의 중이라면 그 기업들이 부인하는 공시를 냈겠느냐”고 반문했다. ‘특정기업을 염두에 둔 의향서 마감 시한 연장’이란 시각에 대해 외환은행 관계자는 “각 기업들이 연초에 경영전략을 세우느라 하이닉스에 대해 충분한 검토 시간을 갖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마감 시한을 연장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GS와 한화가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음에도 이들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배경엔 대형 M&A 추진 전력이 깔려 있는 듯하다. GS의 경우 지난 2008년 포스코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시도했으나 포스코와의 가격 견해 차이로 컨소시엄이 깨졌다. 이후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자금 문제 때문에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이미 대형 M&A를 위해 긴 시간과 거액의 자금을 들였다가 쓴맛을 본 전력의 GS와 한화는 하이닉스뿐만 아니라 대우건설 인수 후보군에도 계속해서 오르내려 왔다.
지난 2005년 LG에서 분리한 GS의 허창수 회장은 ‘재계 톱5 진입’을 목표로 내세워 왔지만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가 버틴 재계 5강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2005년 그룹 출범 때부터 전담팀을 꾸릴 정도로 애착이 컸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도 실패한 GS의 또 다른 대형 M&A 추진 가능성이 항상 주목을 받아왔다.
대형 M&A 성공사례를 써나가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포기로 체면을 구겼던 한화그룹에 대해서도 ‘명예회복’을 위한 대형매물 인수 도전 가능성이 줄곧 제기돼 왔다. 한화는 하이닉스 외에도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후보군에 계속해서 거론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교보생명 지분 24%를 보유해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33.62%)에 이은 2대주주로 있다는 점이 “한화가 금융업 강화를 도모할 것”이란 관측과 맞물려 인수 추진설을 더욱 부풀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화 측은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선을 긋는다.
하이닉스는 대우건설과 마찬가지로 덩치는 크지만 사겠다는 곳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아 채권단의 속을 태우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하이닉스 매각 흥행을 위해 후보 기업 명단을 흘리는 것 아니냐”며 시선을 채권단에 향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환은행 측은 “하이닉스 매각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업계 소문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채권단 측은 지지부진한 하이닉스 매각 성사를 위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건만 하이닉스를 둘러싼 최근 상황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GS와 한화의 하이닉스 인수 추진설이 보도된 지난 2일 GS 주가는 전일대비 0.87%포인트, 한화 주가는 6.55%포인트 하락했다. 지난해 9월 효성이 단독으로 하이닉스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가 주가가 폭락한 일이 회자되면서 증권가엔 ‘하이닉스 인수설의 저주’란 표현까지 등장한 상태다.
지난 3일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이중희)는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 기술이 유출돼 하이닉스로 흘러들어갔다는 수사내용을 발표했다. 이 수사가 비공개로 진행 중이란 소문이 이미 지난 연말부터 재계와 증권가에 퍼진 바 있다. 검찰의 하이닉스에 대한 비공개 수사 소문이 돌아다니면서 지난 1월 29일 인수의향서 마감 당시 어느 기업도 응하지 않은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편 하이닉스의 ‘옛 주인’이자 단골메뉴처럼 인수 후보기업으로 거론돼온 LG그룹도 하이닉스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하이닉스 인수의향서 마감 시한 연장 발표가 난 지난 2일 정상국 ㈜LG 부사장은 <연합뉴스>를 통해 “하이닉스 인수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LG의 입장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LG는 지난 1999년 정부의 반도체 빅딜 결정에 따라 반도체 사업을 당시 현대전자에 넘겨줬고 이는 하이닉스의 모체가 됐다. 반도체 빅딜에 대한 아쉬움과 견실한 자금 동원 능력 때문에 LG는 줄곧 하이닉스 인수 후보로 거론돼 왔다.
이에 대해 지난 2일 정 부사장은 “LG의 의사와 관계없이 주식시장 등에서 인수 가능성을 제기하는 데 대해 회사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재계와 금융권에선 옛 주인마저 등을 돌린 하이닉스가 자칫 M&A 시장의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