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광모 씨(왼쪽), 구본준 부회장 | ||
LG그룹 지주사 ㈜LG는 지난해 12월 21일 공시를 통해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4녀인 구순자 씨 보유 주식 47만 658주 전량이 그 자녀들에게 상속됐음을 알렸다. 약 한 달 후인 지난 1월 20일 구순자 씨 자녀들은 상속받은 주식 중 73%가량인 34만 3000주를 장내매도한 것으로 공시됐다.
그런데 같은 날 구광모 씨가 ㈜LG 주식 9만 3000주를 장내매수했다. 그리고 구광모 씨 생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2만 5000주)과 구본준 LG상사 부회장(9만 주),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2만 5000주) 등 구본무 회장 동생들도 각각 지분을 사들였다. 그밖에 구 회장 사촌동생 구본길 씨가 6만 주를 장내매수했으며 역시 구 회장과 사촌지간인 이욱진 씨도 5만 주를 늘렸다. 구순자 씨 자녀들이 내놓은 34만 3000주 전량이 구광모 씨를 비롯한 LG 총수일가에 흡수된 것이다.
그동안 LG그룹 총수일가는 대주주 명부에 오른 인사들 중 일부가 지분을 처분할 경우 같은 양만큼 다른 총수일가 일원이 매입하는 식으로 총수일가 전체 지분율을 유지해왔다. 결국 구순자 씨 일가 몫으로 돼 있던 지분 중 일부가 가족회의를 통해 구광모 씨 등의 몫으로 가게끔 조율된 셈이다.
이번 지분 거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역시 최근 들어 본격 경영수업에 돌입한 구광모 씨다. 지난 2006년 LG전자에 입사한 구광모 씨는 2007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스탠퍼드대학 경영대학원 석사과정(MBA)을 마치고 지난해 귀국해 9월 중소기업 보락 정기련 대표의 장녀 정효정 씨와 결혼한 뒤 11월 LG전자에 휴직 전 직급인 과장으로 복직했다. LG그룹 계열사들의 지방 공장들을 돌면서 현장학습을 거친 구광모 씨는 지난 연말부터 LG전자 미국 뉴저지 법인에서 재경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구광모 씨는 이번 지분 거래를 통해 ㈜LG 지분율을 종전의 4.67%에서 4.72%로 끌어올렸다. 현재 ㈜LG 최대주주는 지분 10.68%를 보유한 구본무 회장이고 그 뒤를 구본준 부회장(7.63%)과 구본능 회장(5.03%)이 따르고 있으며 구광모 씨는 4대 주주에 올라 있다. 재계에선 LG가 당분간 구광모 씨를 국내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해 해외법인에 근무시키면서 차근차근 지분율을 올려주려 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최근 ㈜LG 지분 거래에서 시선을 끄는 또 한 사람은 바로 구본준 부회장이다. LG그룹 안팎에선 구광모 씨보다 구본준 부회장 입지 확대 여부에 더 큰 관심을 쏟기도 한다. 지난 연말 ‘구 부회장이 LG전자 CEO(최고경영자)로 갈 것’이란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로 구 부회장은 평소 그룹 핵심 계열사인 LG전자에 애착을 가져왔다.
비록 남용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재신임됐지만 그룹 내 구 부회장 세력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제법 많을 정도로 사내 신망도 두텁다. LG 측이 구광모 씨에 대한 승계방침을 공식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구본준 부회장의 지주사 지분율 증가 같은 입지 강화 소식은 LG의 후계 전망을 여러 갈래로 해석하게끔 만드는 요인이 된다.
구본준-구광모 두 사람의 지주사 지분율이 제법 오랜 기간 정체상태로 있다가 이번에 갑작스레 늘게 됐다는 공통점도 있다. 구본준 부회장은 2006년 11월 28일 이후로 이번 지분 매입 이전까지 3년여 동안 단 한 주의 지주사 주식도 사들인 적이 없다. 구광모 씨는 지난해 3월 13일 ㈜LG 주식 14만 8000주를 매입해 지분율을 4.67%까지 끌어올린 이후 이번 지분 거래 직전까지 약 10개월간 지분율에 변동이 없었다.
지분율 변화에 따라 향후 입지와 관련된 여러 관측을 몰고 다니는 두 사람이 동시에 거의 비슷한 지분(지분율 약 0.05%)을 사들인 점을 ‘LG 총수일가에서 후계에 대해 아직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재계에선 경영수업에 나선 구광모 씨가 구인회 창업주-구자경 명예회장-구본무 현 회장으로 이어진 장자승계구도 전통을 4대째 이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구본준 부회장의 지주사 지분율 증가 속도가 구광모 씨에 비해 더디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현재 그룹 경영의 전면에 서 있으며 ㈜LG 지분 외에도 LG상사 지분 3.01%(개인 최대주주)까지 보유한 구 부회장과 아직 공식적으로 ‘황태자’ 낙점을 받지 못한 구광모 씨를 비교하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시선도 있다. 구광모 씨와 구본준 부회장을 둘러싼 이 같은 관측들은 이들의 지주사 지분율이 출렁일 때마다 어김없이 제기될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