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개미 ‘작전’에 개미들만 ‘아작’
문덕 씨가 주식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낸 것은 지난 2004년 초. ‘비밀스럽지만 기초에 기반을 둔다’는 말에서 따온 ‘비초’란 필명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문 씨는 당시 SK증권 대우증권 현대증권 등이 주최한 각종 실전투자대회에서 상위권을 휩쓸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친구들이 토익점수에 열을 올리던 스물세 살 무렵, 나는 컴퓨터 앞에서 홀로 실전투자경험을 쌓으며 주식시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문 씨의 말은 아직도 개인투자자들의 입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이기도 하다.
문 씨는 이후 <비초의 비칙>이란 투자전략서를 출간하며 유명세를 더해갔다. 당시 연세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문 씨는 각종 증권사를 돌며 직원들을 상대로 강연을 벌이는 등 그간 축적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 주력했다. 다만 책 출간 이후에는 특별히 실전투자대회나 주식시장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은 없었다.
그러던 문 씨가 주식시장에 다시 등장한 것은 지난 2009년 7월. 이 달 19일 코스닥 상장사 ㈜비전하이테크의 최대주주였던 ㈜에프애치는 보통주 176만 3491주(13.50%)를 ㈜엘드에 양도해 최대주주가 변경됐다고 밝혔다. 투자컨설팅업체였던 엘드는 바로 문 씨가 자본금 5000만 원을 투자해 지난해 초 설립한 회사였다.
문 씨가 당시 코스닥 상장사 최대주주로 올라섰다는 소식과 함께 다시금 주식시장 참여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각종 언론에서 문 씨의 코스닥 상장사 인수 소식을 앞 다투어 보도하기 시작했다. 슈퍼개미로 이름을 날린 후 주로 강연에만 몰두했던 그의 주식시장 나들이가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지 관심이 집중됐던 것이다.
이와 동시에 비전하이테크가 주식 투자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비전하이테크는 노트북용 모니터 부품을 제조하는 업체. 2000년 불과 2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벤처기업이다. 이후 LCD, LED 모니터의 핵심부품을 제조하는 업체로 급성장해 2009년 초에는 월매출 100만 달러(11억여 원)이상의 호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어쨌든 당시까지만 해도 문 씨의 주식시장 출정식은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전하이테크 주가는 문 씨의 인수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인 7월 20일, 전일대비 12.37% 오른 341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후 비전하이테크는 종가 3500원을 넘나들며 연일 상승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문 씨가 비전하이테크를 인수한 지 불과 3개월여 만인 지난해 12월, 비전하이테크는 최대주주 엘드의 대표이사 문 씨가 횡령·배임행위를 한 사실이 있다고 공시하며 불안한 기류를 타기 시작했다. 공시에 따르면 문 씨가 앞서 그해 9월에 있었던 소수주주가 개최한 임시주주총회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회사 주거래은행 계좌를 통해 3회에 걸쳐 회사자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후 비전하이테크 측 관계자들과 주주들이 검찰에 문 씨를 배임·횡령 혐의로 고소하면서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사건을 맡은 대전지검 천안지청 형사1부(부장검사 김기준)는 지난 1월부터 이 사건과 관련한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수사 결과 비전하이테크 경영권을 인수한 후 경영권 분쟁을 겪게 된 문 씨와 비전하이테크 대표이사 김 아무개 씨 등은 그해 9월 예정된 임시주주총회에서 신규이사 선임 등 경영권 방어를 명목으로 회사 계좌에서 45억 8000만여 원을 임의로 인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난해 11월 같은 명목으로 회사자금 44억 7000만여 원을 추가로 인출해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차명을 이용해 회사 주식을 재매입하는 방식으로 회사 공금을 횡령해 경영권 확보 작업을 벌여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낸 검찰은 지난 2월 2일 비전하이테크 이사 박 아무개 씨(38)를 횡령 혐의로 구속하고 문 씨와 김 씨에 대해서는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하지만 문 씨는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자 잠적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신화로 불리던 문 씨가 검찰에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또 문 씨와 횡령을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 대표 역시 검찰 수사착수 직전인 지난 1월 초 해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로 인해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역시나 개미(소액주주)들. 비전하이테크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고 거액의 횡령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거래소의 실질심사를 거쳐 지난 1월 29일부로 상장폐지 결정된 상태다. 지난해 문 씨가 회사를 인수할 시점까지만 하더라도 기준시가 총액 500억 원 상당의 주식이 사실상 휴지조각이 된 셈이다. 결국 개미들만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됐다.
한편 검찰은 이번 비전하이테크 수사 과정에서 회사 임원들이 지난해 6월 유상증자 직전 주가조작을 벌인 혐의를 포착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최근 수사과정에서 문 씨가 애초에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비전하이테크 내부인사들과 소위 ‘작전주’ 공모를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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