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현실화된 이후부터 지난해까지는 ‘경기회복’ 관련 이슈가 거시경제 측면에서의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면, 2010년에는 그 자리를 ‘인플레이션’이 차지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경기회복에 이어 인플레이션이 따라 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흔히 인플레이션을 두 가지로 분류해 설명한다. 하나는 수요가 견인하는 인플레이션이고, 다른 하나는 비용 상승으로 촉발되는 인플레이션이다.
2010년 세계경제가 경험하게 될 물가 여건은 앞의 두 가지 가운데 하나로 뚜렷이 구분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왜냐하면 금융위기를 극복하면서 수요가 살아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가 상승이므로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라 부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정부지원 축소 등으로 비용이 상승하면서 생기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점에서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의 인플레이션은 앞의 두 가지 외에 ‘정책 인플레이션’의 성격이 가미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최근 인플레이션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이 경기회복세가 위축될 것을 우려해 긴축으로 강하게 선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선진국은 인플레이션 위협보다는 경기 재하강 위협에 더욱 민감해 하고 있어 정책적으로 인플레이션을 키우고 있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신흥국 중 호주 등이 이미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중국 역시 긴축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국가의 정책기조는 경기의 확고한 회복을 위해서 긴축적 통화정책을 최대한 늦추거나 또는 긴축 의사를 제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특히 미국보다 중국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는 중국의 긴축 스탠스에 관심이 높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긴축이 느슨한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따라서 중국은 앞으로도 성장과 동시에 인플레이션 환경으로 본격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중국 당국이 대출금리 인상에 앞서 지급준비율을 인상했다는 경험적 사실에 비춰 볼 때도 지준율 인상을 빌미로 대출금리 인상을 최대한 지연시킬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대단히 높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긴축 행보는 이미 시작되었으나 대출금리 인상과 같은 충격 요법 시행은 최대한 지연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긴축이 경제 성장세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은 앞으로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이러한 정책 스탠스는 한국과 같은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쳐 한국 역시 금리 인상 시기를 최대한 지연시킬 것이고 중국과 같은 논리로 인해 인플레이션 압력은 높아질 것이다.
국내 경제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CPI가 점점 높아지는 등 인플레이션 시대가 다시 도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CPI는 지난해 7월만 해도 전년 동월대비 1.6%에 머물렀으나 올 1월에는 3.1%까지 올라갔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극도로 위축됐던 화폐유통속도와 통화승수(본원통화 1단위가 몇 배의 통화를 창출하는지 나타내는 지표)가 높아지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통화의 회전율을 나타내는 화폐유통속도는 지난해 1분기(1∼3월) 0.687까지 떨어졌지만 3분기(7∼9월)에는 0.710으로 1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통화승수의 움직임도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조만간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우리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철강, 화학과 같은 소재 및 원자재 관련 산업군이 올해 인플레이션 방어에 효과적이고 경기회복의 수혜도 받을 수 있어 우선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형중 우리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경기회복에 따라 생산이 증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물가 상승분을 제품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가격 전가력도 높기 때문”이라며 “과거 물가가 저점을 찍고 상승세를 지속하던 시기를 보더라도 철강, 화학과 같은 소재 산업군의 수익률이 양호했다”고 말했다.
신영증권도 ‘인플레 속에서 찾는 희망’이라는 시황보고서에서 생산자 물가지수가 높은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기업간(B2B) 시장 성향이 강한 화학, 철강, 기계, 전기전자, 운수창고 업종의 영업이익률이 높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실제 현재의 높은 생산자물가지수와 경기둔화 환경과 가장 비슷한 2004년 2월 28일부터 1년간 이들 5개 업종의 수익률은 29.1%로 코스피지수 상승률인 14.5%의 두 배를 기록했던 바 있다.
신영증권은 아울러 이 기간 동안에는 건설, 의약품, 종이목재, 전기가스, 음식료 업종 등 대체로 경기방어주 성격의 업종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설명했다. 또 대형주보다는 중소형주의 수익률이 좋았고, 1년간 평균 8.4%의 수익률을 기록한 금융업보다는 제조업(+15.3%)의 수익률이 6.9%포인트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전통적으로 보험주가 상승세를 탔다.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동력이 된다는 분석이다. 올해 삼성생명의 증시 입성에 따라 보험주들 매력도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영곤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예금금리 인상에 따라 효과가 제한적인 은행에 비해 보험사는 투자영업이익으로 금리 상승분의 70%가량은 흡수할 수 있어 효과가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태동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화재의 경우 금리가 0.50%포인트 오르면 시가총액 기준으로 기업가치가 3~4% 정도 오르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LIG손해보험 등 손보사들의 기업가치(EV) 발표가 잇따르면서 이들 주식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우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헤지(위험 회피)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우증권은 인플레이션 헤지 효과가 큰 종목으로 대상, 한솔제지, 롯데쇼핑, 풍산, 한섬 등 내수 관련 종목을 제시했다.
류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