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한 유명 주류업체 회장의 셋째아들인 A 씨는 지난 2004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본격적인 회사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해 3월 술을 제조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원료를 생산하는 계열사의 대표이사로 부임한 A 씨는 이후 몇몇 자회사로 영향력을 확대하며 사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세워왔다.
A 씨가 새로운 사업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 초. A 씨는 그해 4월 엔터테인먼트업체 C 사를 차리면서 연예사업에 첫 발을 담갔다. 등기상 C 사의 대표이사는 다른 사람으로 올라 있는 상태지만 실제로는 A 씨가 모든 자금을 투자해 C 사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계에 발이 넓은 사람을 일명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업체를 차렸다는 후문이다.
C 사는 설립 때부터 트로트 가수 발굴에 주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C 사가 영입했던 중견 트로트 가수가 2007년 인기를 끌었고 또 당시 연예계에 불던 젊은 트로트 가수들의 성공 사례가 연이어 조명되던 시기. 이에 C 사에서는 신세대 트로트 가수를 키우는 일에 전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발맞춰 C 사에서 발굴한 신예가 바로 B 씨. B 씨는 이전까지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면서 한때 탤런트로 얼굴을 알렸고 2005년께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인물이다. C 사로 소속사를 옮기면서 2집 앨범을 출시했고 이후 그리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행사 등을 통해 활발히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B 씨가 고민 끝에 검찰에 구원의 손길을 요청한 것은 지난 2월 11일. 이날 B 씨는 ‘지난 2007년부터 실질적인 사주였던 A 씨로부터 계속해서 성폭행을 당해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고소장을 서울서부지검에 제출했다. 재벌 2세로부터 2년여 동안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모진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B 씨가 그간 신고를 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B 씨도 처음 성폭행을 당했을 때부터 신고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예계에서 퇴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B 씨의 충격적인 성폭행 피해 사실이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B 씨가 성폭력상담소의 문을 두드리면서다. 지난 2009년 11월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찾은 B 씨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털어놓게 됐다고 한다. A 씨로부터 각종 변태적인 행위는 물론이고 성폭행으로 인해 특정 신체 부위에 치료기간을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의 상해를 입기도 했다는 것이다.
B 씨는 처음 상담소를 찾았을 때도 ‘신고는 절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비록 피해사실을 털어놓기는 했지만 연예인으로서 앞으로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미칠 수 있다는 고민 때문이었다. 이에 B 씨의 상담을 받았던 성폭력상담소의 자문변호사가 3개월여 설득을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B 씨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B 씨와 상담을 벌였던 변호사가 피해사실을 대신해서 검찰에 전했고 검찰까지 나서서 설득작업을 거치면서 결국 B 씨도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애초 자문변호사는 서부지검 성폭력전담 검사를 방문해 B 씨의 피해사실을 말했지만 본인의 직접적인 고소 없이는 수사가 시작될 수 없는 상황. 이에 검찰이 직접 나서서 B 씨를 설득한 끝에 결국 지난 2월 11일 B 씨가 정식으로 고소장을 접수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이번 성폭행 사건 수사에 착수하게 된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백종우)는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B 씨에 대해 고소인 조사를 마친 상황이다. B 씨는 A 씨로부터 수년간 성폭행을 당하며 입었던 상해 등 관련 범행을 입증할 수 있는 증빙서류를 상당수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검찰은 곧 A 씨를 소환할 예정이며 혐의가 드러날 경우 사법처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기자는 A 씨에게 이번 사건과 관련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C 사 측과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B 씨 역시 검찰 고소 이후 활동을 중단하고 잠적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