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걸고 10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낯선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상세한 위치를 묻는 대리운전 기사의 전화였는데 이상하게도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대리운전 기사는 정말 여성이었다.
이 씨는 직전 술자리에서도 여성 대리운전 기사가 성매매를 시도한다는 얘길 나눈터라 경계심이 생겼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일단 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출발부터 뭔가 석연치 않았다. 짧은 옷차림이야 뒷자리에 타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차안을 가득 채우는 진한 향수 냄새와 묘하게 흘러가는 분위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어색함을 해소하고자 슬며시 “이렇게 향수 냄새가 진하면 남자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텐데요”라고 말을 건네자 여성기사는 “절대 향수 같은 거 뿌리지 않는다”며 손사래만 쳤다. 그런데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음과 동시에 차의 방향이 이상해졌다. 분명 목적지를 정확히 안내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주차장 인근을 맴돌기 시작한 것. 당황한 이 씨는 “우리 집 방향은 이쪽이 아니다”며 약간 목소리를 높였고 그제야 차는 정상적인 방향을 향했다.
하지만 집 근처에 다다르자 또 다시 직전의 상황이 되풀이됐다. 코앞에 아파트 주차장을 두고 단지를 빙글빙글 돌면서 자꾸 말을 걸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보다 배는 걸린 탓에 언짢았던 이 씨는 결국 “대리운전은 시간이 돈이라 들었는데 왜 이러냐”고 따져 물었지만 여성기사는 당당한 목소리로 되레 화를 냈다.
그는 “이 시간에 대리를 부르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냐. 그럴 의도가 없었으면 남자기사를 요청했어야지 손님 잘못이다. 오늘은 그냥 돌아갈 테니 대리운전 비용만 달라”며 돈을 낚아채듯 가지고 떠났다.
본의 아니게 황당한 일을 겪었던 이 씨는 다음날 회사 동료들에게 이 같은 내용을 말하자 너도나도 자신의 경험담을 쏟아냈다.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는 한 동료는 “한번은 몸을 제대로 못 가눌 정도로 술에 취해 대리운전을 불렀는데 그때도 여성기사가 왔다. 집 주소를 말하고 잠깐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어떤 한적한 주차장이더라. 내가 깨니 기다렸다는 듯 ‘잠깐 쉬어가자’며 막무가내로 손을 이끌었는데 밖을 보니 모텔이었다. 대리기사를 바꿔 겨우 집에 갔으니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었다”고 말했다.
정말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 씨가 가지고 있던 전화번호를 통해 여성기사와 통화를 시도해봤다. 처음엔 화를 내던 여성기사는 이내 “원래 다 그러고 사는 것”이라며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30대 중반의 3년 차 대리운전 기사라는 그녀는 “나 같은 경우는 1년 내내 대리운전을 하지만 일부 여성기사는 여름휴가나 연말연시에만 일을 한다. 물론 모든 여성기사가 성매매를 하진 않는다”며 “아는 사람들은 전화로 성매매가 가능한 기사를 찾기도 하고 때론 무작정 우리가 찾아가기도 한다. 마음이 맞으면 그냥 돈 안 받고 좋은 시간 보냈다 생각하기도 하고 대리운전 비용과 별도로 5만~10만 원 정도 받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리운전 업체들은 하나같이 “절대 그런 일은 없다”며 부인했다. 그러다 이내 직원들 관리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리운전 업체는 “성매매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성 대리운전 기사가 있지만 그들 대부분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며 “다만 손님과 연결해준 뒤의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제지할 방법이 없다. 최대한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당하는 여기사도 많다” 하소연
지난 9일 서울 강남에서 남자기자에게 부탁해 대리운전 업체 7곳에 전화를 걸어 여성 대리기사를 요청해보았다. 그랬더니 2곳에서만 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다른 곳들은 이미 여성기사가 다 호출을 받은 상태거나 목적지(수원)로는 가지 않는 기사들이라 했다. 또 일부 업체는 금, 토요일만 여성기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여성기사가 있다던 한 곳에서 “서비스가 가능한 직원은 없다”는 이상한 답변을 해왔다.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아무 것도 아니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으려하기도 했다. 이후 ‘서비스가 안 된다’는 업체로부터 도착한 여성 대리기사에게 취재 중임을 밝히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비교적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30대 초반의 여성기사는 “서비스는 성매매다. 휴가시즌이라 부쩍 찾는 사람이 많아지나 보다. 우리 회사는 그런 거 안 하기 때문에 사전에 확실히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바캉스 대리기사’에 대한 몇 가지 에피소드들도 알고 있었다. 여성기사는 “수도권은 덜하지만 지방에서는 더 난리다. 휴가를 맞아 연고지를 벗어났을 경우 서로 얼굴을 알 염려도 없고 앞으로 두 번 다시 만나지 않는다고 생각해 마음 놓고 여성 대리운전 기사를 부른다. 숙소까지 태워다 달래놓고 도착해선 두 사람이 같이 올라가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때론 사건사고도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그는 “우리끼리만 아는 얘기들도 많다. 일방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 대리기사도 있고 남자가 당하기도 한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전화번호와 집 주소를 아니 협박에 시달리는 남성도 있다. 한때 손님들 사이에서 일부 여성기사의 전화번호가 ‘꽃뱀’이라고 소문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냐는 질문에는 “여성기사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이 있고, 일부는 성매매를 하거나 꽃뱀으로 돌변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가끔 술 취한 손님들이 성추행하는 것도 참아가며 다 벌어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