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주총 시즌을 앞두고 삼성그룹은 두 명의 은행장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기로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 삼성전자는 지난 2월 23일 ‘주주총회 소집 결의’ 공시를 통해 오는 3월 19일 주총을 열고 이인호 신한은행 고문을 새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임을 알렸다.
이인호 고문은 지난 1999년부터 4년간 신한은행장을 역임한 뒤 2005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신한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그는 지난 2008년 연세대 출신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70여 명이 모여 만든 ‘연세금융인회’(연금회) 고문을 맡고 있기도 하다.
삼성그룹 계열사 제일모직은 조흥은행장을 지낸 홍석주 AT커니코리아 고문을 3월 19일 주총을 통해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할 예정이다. 홍 고문은 2002년 3월부터 2003년 7월까지 조흥은행장을 지냈으며 이후 한국증권금융과 한국투자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그밖에 제일기획은 정영근 전 KB데이터시스템 대표이사를 새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삼성의 금융권 거물 영입은 최근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뤄진 점과 맞물려 여러 해석을 낳는다. 여야 합의 개정안은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되 금융자회사가 3개 이상이거나 금융사들의 총 자산규모가 20조 원 이상일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카드 등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그룹은 이에 해당한다.
삼성은 현재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이루고 있다. 금융사와 비금융사의 소유관계가 뒤섞여 있는 삼성그룹이 지주회사제 전환에 나서려면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지주회사제 전환에 대해 삼성 측은 “아직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단체들로부터 줄기차게 지배구조 개선 요구를 받아온 만큼 삼성이 얽혀 있는 금융자회사 지분관계를 손보려 할 경우 은행장 출신 사외이사들이 어떤 역할을 해줄지가 주목받을 전망이다.
게다가 삼성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삼성생명을 5월에 상장시킬 계획이다. 이번 은행장 출신 영입이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아들 이재용 부사장의 시대를 맞아 금융업을 더욱 키워보려는 삼성의 의지에 어떻게 부합할지도 관심거리다.
현대차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HMC투자증권을 갖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 역시 지주회사제로 전환할 경우 중간금융지주사 설립 대상이다. 현재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차’의 순환출자구조를 이루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 안팎에선 지난해부터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제 전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기아차그룹이 최근 현 정부 경제정책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는 점은 눈길을 끌 만하다.
현대차는 3월 12일 주총을 통해 임영록 전 재정경제부 2차관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임 전 차관은 옛 재무부를 시작으로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 등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오는 4월 신규 선임될 금융통화위원 후보 물망에 올라 있기도 하다.
현대모비스는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된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을 오는 3월 12일 주총에서 재선임할 예정이다. 어 위원장은 고려대 총장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대학 후배라는 점에서 ‘MB계’로 분류돼 왔다. 차기 한국은행 총재와 KB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얼마 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가브랜드위원장으로서 소임을 다하겠다”며 한은과 KB금융 관련 소문을 부인했지만 현 정권의 신뢰가 각별하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어 보인다.
SK
SK그룹에선 최태원 회장의 미국 시카고대학 동문 영입에 공을 들인 듯하다. 주력 계열사인 SK에너지는 3월 12일 주총에서 시카고대학 대학원 경영학 석사(MBA) 출신인 김영주 법무법인 세종 고문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할 예정이다. 김 고문은 경제기획원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등 경제부처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뒤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수석비서관,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 산업자원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시카고대학 경영학 박사 출신인 최혁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도 SK에너지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최 교수는 한국증권학회장, 한국재무학회 이사, 한국증권거래소 선물옵션시장발전위원 등을 거쳤으며 현재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을 겸하고 있다.
SK그룹에선 최근 몇 년 사이 정기인사를 통해 시카고대학 출신들이 요직을 꿰차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이들이 최태원 회장 친정체제 강화를 위한 친위세력으로 자리잡아가는 가운데 사외이사진 역시 시카고대학 출신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이 관전 포인트다.
SK에너지 신규 사외이사 명부에 이재환 동국대 경영학과 부교수 겸 삼성SDI 고문이 포함돼 있는 점도 흥미롭다. 이 고문은 지난 1994년 3월부터 1년여 동안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홍보팀장(상무)으로 이건희 전 회장을 보좌한 경력을 갖고 있다. 이후 이 고문은 삼성벤처투자 사장을 거쳐 삼성BP화학 사장을 역임했다. SK그룹엔 삼성 출신들이 다수 영입돼 있으나 삼성그룹 총수를 측근에서 보좌했던 인사가 사외이사로 영입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LG
LG그룹은 이번 주총 시즌을 통해 세 명의 현직 서울대 교수를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하게 된다. LG전자는 3월 주총을 통해 주종남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를, LG화학은 오승모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를, LG디스플레이는 안태식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를 각각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할 예정이다.
이들이 모두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석학들이란 점 외에도 LG그룹 경영을 이끌고 있는 구본준(LG상사) 강유식(㈜LG) 남용(LG전자) 김반석(LG화학) 이상철(통합 LG텔레콤), 다섯 명의 부회장단과 함께 서울대 동문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