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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월 8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에 복귀한 당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등 관계자들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밴쿠버로 출국하는 모습. 연합뉴스 | ||
지난 3월 24일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2월 17일과 24일 사장단협의회를 통해 경제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의 경륜과 경험이 절실하다고 판단해 2월 24일 회의를 마치고 회장님 복귀를 요청하는 건의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에 이 회장이 “지금이 진짜 위기다. 삼성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견을 밝히며 결국 복귀를 결심했다는 것이 삼성 측 설명이다.
그러나 지난 한 달 동안의 논의와 숙고 과정만을 통해 이 회장의 복귀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보는 재계 관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지난해부터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이나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사장이 나서 이 회장 복귀의 필요성을 설파한 바 있다. 그밖에 삼성의 여러 관계자들도 이 회장과 전략기획실 부재로 빚어지는 의사결정 속도에 대한 아쉬움을 각종 경로를 통해 피력해왔다. 지난해 삼성전자 냉장고 폭발 사고 당시 이 회장이 격노했다는 소식이 크게 알려진 것에 대해 이 회장 복귀 전초작업이란 해석이 따르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이 회장 복귀에 대해 “그럴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라는 목소리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삼성특검 수사 파문으로 이 회장은 지난 2008년 4·22 삼성쇄신안 발표를 통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조세포탈 혐의로 집행유예 판결(항소심)을 받은 이 회장이 상고를 포기한 것은 그해 10월의 일이다. 유죄 확정 후 불과 14개월 만에 이 회장이 단독 사면을 받은 데 이어 사면 3개월 만에 경영일선에 전격 복귀한 것이니 시기상조 논란이 일어날 법도 하다.
경제개혁연대는 즉각 논평을 내고 “삼성은 국민 모두를 우롱했고 사법부와 정부를 농락했다”며 “이건희 회장을 칭송하는 것이 삼성을 위하는 일이 아니다”고 날을 세웠다. 야당은 물론 재계 일각에서조차 “이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명분으로 사면된 만큼 내년 7월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결과를 보고 복귀하는 편이 더 큰 명분을 얻었을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비판 여론을 삼성 측이 예상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이 회장의 ‘전격 컴백’이 이뤄진 배경에 대해 삼성 측은 최근 도요타 사태와 애플의 아이폰 공세 등 급변하는 시장 상황을 들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결국 이 회장의 컴백을 불렀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오는 6월 지방선거와 남아공월드컵 일정을 고려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비판 여론이 들끓더라도 곧 열리는 대형 이벤트들을 통해 적절히 희석시킬 수 있다는 자체판단이 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최근 삼성에 비판적 논조를 유지해온 일부 언론에 삼성 제품 광고가 재개된 것 역시 이 회장 복귀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이었을 것이란 해석도 뒤따르고 있다.
이 회장 복귀 소식에 대해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개별기업의 경영적 판단”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사면 받은 지 3개월밖에 되진 않지만 이 회장의 전격 복귀에 대해 정부·여당이 우호적 입장을 취할 것이란 계산 역시 이 회장 측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 총수인 이 회장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적극 호응하며 앞장설 경우 다른 대기업들에 대한 파급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향후 이 대통령 해외 방문시 경제인 수행단에 그룹 내 전문경영인들 대신 이 회장이 직접 나선다면 나머지 재벌들 역시 총수가 직접 나서 이 대통령을 수행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주변에선 이 회장의 조기 복귀가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부각시킬 계기가 될 거라 벌써부터 기대하는 눈치가 엿보인다.
이건희 회장의 복귀는 그가 밝힌 대로 ‘위기의 삼성’을 구하는 것과 더불어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으로의 안정적 승계를 위한 발판 마련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에서 이재용 부사장은 삼성에버랜드 지분 25.10%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그룹을 장악할 토대를 마련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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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서현 전무(왼쪽)와 이부진 전무. 유장훈 기자 | ||
이 회장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 CES에 참석한 자리에서 자식들에 대해 “아직 어린 애”라며 여전히 배워야 할 게 많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회장의 전격 복귀는 아들 이 부사장의 멘토 역할을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 직접 해야겠다는 의지 표현으로도 풀이된다.
지난 2년간 삼성전자에선 윤종용 전 부회장을 비롯해 이기태 전 부회장, 황창규 전 사장 등 스타 CEO(최고경영자)들이 줄줄이 옷을 벗는 등 세대교체 작업이 숨 가쁘게 이뤄져 왔다. 이들 같은 거물급 CEO를 내보낼 수 있는 결정권자는 이 회장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는 이재용 부사장을 삼성의 대표 CEO로 키워주기 위한 전초단계로 해석되기도 했다. 앞으로 이 부사장이 사장과 부회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고 3대 총수직에 안정적으로 오를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회장이 전격 컴백 카드를 뽑아든 것으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이건희 회장은 복귀 의사를 밝히며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사라질 것”이란 경고를 했다고 한다. 이는 향후 삼성을 먹여 살릴 신성장동력 장착 필요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재계에선 이 부사장이 삼성의 미래성장동력 발굴의 중심에 서게끔 이 회장이 ‘후광’ 역할을 해줄 것이라 보고 있다.
때마침 이재용 부사장을 중심으로 한 신규 사업 진출 소문이 나돌고 있어 관심을 끈다. 최근 한 정보기관에 ‘삼성그룹이 현대·기아차그룹의 글로비스 같은 대형 물류회사를 만들기 위해 TF팀를 구성했다’는 보고서가 올라왔다고 한다. ‘삼성 계열사들의 물량을 몰아주면 글로비스 이상 가는 회사로 키울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곁들여서. 더 나아가 금융권 일각에선 ‘최근 경영난에 직면한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들 중에 매물이 나올 경우 삼성이 눈독을 들일 것’이란 관측까지 덧붙인다.
삼성의 신사업을 둘러싼 이 같은 소문들의 중심엔 이재용 부사장이 있다. 회사의 신규 설립이나 인수·합병 혹은 운영 등을 이재용 부사장에게 맡겨 향후 경영권 승계 명분을 쌓게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신사업 진출 소문에 대해 삼성 측은 “전혀 논의된 바 없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한편 새롭게 회장실을 꾸린 이 회장 머릿속엔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 두 딸들에 대한 ‘교통정리’ 시나리오 또한 들어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초 전무 승진에 이어 9월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까지 꿰찬 이부진 전무는 최근 들어 삼성물산 업무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삼성에버랜드가 빌딩관리 사업을 하는데 삼성물산이 건설 업무를 하니까 연관성이 있어서 (이부진 전무가) 삼성물산 업무 일부에 관여할 뿐”이라 밝힌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 전무가 호텔신라와 삼성에버랜드에 이어 그룹의 모태이자 주요 계열사 지분을 두루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까지 넘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는다.
지난 연말 정기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한 이서현 전무는 제일모직에서 미래사업 발굴과 브랜드 전략 기획 등을 총괄하고 있다. 기존의 패션에서 화학 전자소재까지 사업 분야를 넓혀온 제일모직은 주식시장에서 호텔신라보다 앞서 계열분리 소문을 몰고 다니기도 했다. 경영권 승계 명분을 충분히 쌓지 못한 외아들과 날이 갈수록 활동영역을 넓혀가며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딸들 간의 영역 정리 필요성 역시 이 회장의 전격 컴백을 부른 요인 중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협의회의 복귀 요청을 받고 나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고 밝혔다고 한다. 2년 만에 회장실로 돌아온 이 회장의 시선이 과연 어디를 향할지 재계는 물론 전 국민의 관심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