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기지촌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숨진 서 씨는 6자매 중 막내로 태어나 한국전쟁 때 피란길에서 가족과 헤어져 혼자 살아왔다. 10세 때 앓은 귓병으로 언어장애가 있어 말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는 생계를 위해 미군업소에 취업했다가 성매매의 길에 들어섰다. 골다공증도 심각했다. 범인의 폭행에 서 씨 갈비뼈가 모두 부러진 것도 바로 이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당시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이산가족 상봉 TV 프로그램을 통해 헤어진 언니 중 한 명을 만나 잠시 의정부 미군부대를 떠나기도 했지만, 언니 역시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기지촌으로 돌아와 ‘히빠리’ 생활을 하며 생계를 근근이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의정부경찰서는 즉시 수사에 들어갔다. 목격자가 나타났다. 이웃주민들은 서 씨가 10일 밤 11시 50분쯤 키 180cm 정도의 미군 흑인남성과 팔짱을 끼고 방으로 들어간 뒤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전했다. 진술을 토대로 몽타주가 작성됐다. 범인이 도주하면서 방에 남긴 발자국이 발견됐다. 서 씨의 손톱에는 범인 혈흔도 남아있었다. DNA 분석을 통해 당일 미군 외출자를 대상으로 수사에 들어가면 바로 용의자 확보가 가능했다. 경찰은 미군범죄수사대와 공조를 요청했다. 그렇게 사건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사건은 미군 측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예상치 못한 난항에 빠졌다.
의정부경찰서의 협조 요청을 받은 미군은 미육군수사대(CID)를 통해 자체조사에 들어갔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의 한 관계자는 “미 수사대가 ‘미군 용의자를 확보했다’고 한국 경찰에 전해 우리는 사건이 해결되겠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수개월이 지나도록 ‘수사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했다. 그러다 국내 여론이 잠잠해지자 돌연 ‘우리가 조사한 용의자는 아무런 혐의가 없어 범인이 아니다’라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한국 경찰이 미군을 상대로 직접 수사를 진행하고 싶어도 한·미 주둔군지휘협정(SOFA)이 발목을 잡았다. 당시 SOFA 규정은 지금과는 달리 미군이 강력사건을 저질러도 재판이 끝나야만 한국 측으로 신병인도가 가능토록 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 3월 11일 서정만 씨 살인사건 현장.
한편 2000년 서정만 씨 살인사건 당시 의정부경찰서 형사계장, 2002년 형사과장으로 재직하고 지난 2011년 12월 의정부경찰서장으로 취임한 유 아무개 총경은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건 해결의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그는 “서 씨 사건은 왠지 내가 풀어야 할 숙제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완전범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수사할 생각”이라고 밝혔었다.
유 총경은 현재 경기지방경찰청에서 재직하고 있었다. 지난 24일 기자가 유 총경을 만나 서 씨 사건의 이후 상황을 물어보려 했지만 그는 “나와는 상관없는 사건이다. 왜 자꾸 나에게 묻느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불쾌한 심경을 내비쳤다.
서 씨의 죽음은 한국과 미국의 무관심과 의혹 속에 영원한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져가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미군의 늑장 수사… 모두 장기 미제로
2011년 11월 1일 동두천 성폭행과 이태원 살인사건 관련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등의 기자회견 모습. 이들은 ‘이태원 살인사건’ 용의자 아더 패터슨을 즉각 송환할 것과 한미 SOFA 개정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이어 1998년 8월에는 박순녀 씨(가명·여·당시 66세)가 전북 군산시 산북동의 한 환전소에서 팔과 목, 가슴 등을 칼로 20여 차례 찔린 채 사망했다. 주민들의 제보를 토대로 경찰은 미군 용의자를 검거하였지만, 미군 측의 비협조로 결국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확인하지 못한 채 수사는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또한 그 다음해인 1999년 1월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신차금 씨(가명·여·당시 45세)가 4m 전깃줄에 목 졸려 숨진 시신으로 발견됐다. 신 씨는 발견 당시 나체 상태였는데 사체 위에 립스틱으로 ‘창녀’라는 영어 문구가 쓰여 있었다. 경찰은 미군에 의한 범행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같은 해 9월 역시 동두천시에서 미군과 동거 중이던 이정숙 씨(가명·여·당시 47세)가 숨진 채 발견됐지만,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타살 의혹을 배제하고 자연사라고 단정해 결국 미제로 남았다.
이밖에도 주한미군의 아들 아더 패터슨과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가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동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 씨의 목과 가슴을 9차례 찔러 숨지게 한 일명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도 대표적인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의 박정경수 사무국장은 “주한미군이 벌인 미제사건도 공소시효가 남아 있으면 처벌이 가능하지만 가해자가 한국에 없을 가능성도 높고, 미군에 의해 당시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 유죄를 확증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