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7월 22일 원내대표실에서 당정협의를 갖고 금 거래 양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 금융상품으로 금이 거래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금 선물시장을 만들면서다. 하지만 2004년 이후 거래가 실종되며 유명무실해졌다. 거래 활성화를 위해 거래단위를 10분의 1로 낮춘 미니 금 선물시장이 2010년 만들어졌지만, 하루 거래대금이 수억 원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금 거래시장 설치 방안을 보면 시장 관계자들의 코웃음이 이해가 간다. 정부의 금 거래시장안은 현물을 기반으로 한다. 금을 팔려는 사람은 실제 금괴를 시장에 맡겨야 한다. 금을 산 사람도 1㎏ 미만의 금은 현물로 인출할 수 없다. 금 1㎏의 가격은 4700만 원에 육박한다. 금에만 이만 한 돈을 투자할 사람은 많지 않다.
금 관련업자의 경우 영업을 위한 금을 시장에 맡길 경우 세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부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 현금거래를 하면 세원을 감출 수 있었다. 금 거래시장을 이용해서 금을 구입할 때 내는 세금을 은행에서 금을 구입할 때 내는 세금보다 5% 정도 줄여준다고 하지만, 한시적인 조치인 데다 그리 썩 매력적이지도 않은 조건이라는 평가가 많다. 정부는 이 같은 당근과 함께 금 거래시장 개설 이후 음성적 금 거래를 단속하는 채찍을 쓴다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시중은행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금은 보관자산, 은닉자산이다. 이를 금융투자상품으로 만들면 보관·은닉 기능이 모두 훼손된다”며 “5만 원권도 사재기하는 게 요즘 부자들 추세다. 자녀들에 물려주려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금붙이를 집에 보관하는 게 대부분인데, 이를 내놓고 거래하라면 누가 선뜻 응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정부가 추정하는 연간 금 관련 음성거래는 총 2조 2000억~3조 3000억 원 수준이다. 10%의 부가가치세만 따져도 2200억~3300억 원의 세수가 가능하다. 정부 방침대로 음성거래의 절반만 양성화해도 1100억~1600억 원의 세금을 걷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소규모 금 거래가 세금 없이 이뤄지는데, 과연 세금을 내면서까지 금 거래시장으로 갈 이유가 많지 않다. 회사 자산을 운용하는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결국 세금 더 걷기 위해 시장을 만들겠다는 뜻인데, 세금 더 내겠다고 시장에 참여할 투자자가 어디 있겠느냐”고 쏘아붙였다.
개장된 지 한 달 된 코넥스에 대한 불만도 높다. 정부 방침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만들었지만, 코스닥시장도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굳이 또 다른 중소기업시장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냐는 시각이 많다. 당장 기관과 펀드, 3억 원 이상 투자하는 개인으로 시장참여를 제한하다 보니 거래 자체가 뜸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A 기업의 주가가 1만 원이라고 할 때, 누군가는 이를 비싸다고 생각해야 팔고, 누군가는 이를 싸다고 생각해야 사는 법이다. 투자자들마다 가치평가의 기준이 달라야 거래가 이뤄진다”며 “그런데 기관과 펀드 등으로 시장참여자들을 제한해놓으니 비슷한 가치평가를 하는 이들만 많다.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코넥스시장의 진입요건도 애초 시장설립 요건과는 차이가 많다는 비판도 있다. 코넥스는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업력 등을 이유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초기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하라고 설립된 시장이다. 그런데 시장진입요건은 자기자본 5억 원, 매출액 10억 원, 순이익 3억 원 가운데 한 가지를 충족하면 된다. 기술 관련 조건이 없다. 공시 요건도 느슨해 불완전 투자 가능성도 높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기관 입장에서 코스닥 투자도 꺼리는 마당에, 코스닥보다 경영상황이 불투명한 코넥스 기업에 선뜻 투자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앞장서서 만든 시장이라 일단 투자하는 척은 하지만, 아마 정권이 끝나면 이 시장도 문을 닫지 않을까 싶다”면서 “금융투자협회에서 비슷한 취지의 프리보드 시장을 만들었지만, 결국 시장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한 증권사의 고위임원은 “박근혜 정부는 시장을 투자자의 이익증진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세원(稅源)의 바다로 보는 것 같다. 정부 출범 이후 시장을 위한 제도라고는 없는 듯하다”며 “투자자에게 도움이 되는 시장을 만들어야지, 이와 동떨어져 정부의 목적을 위한 시장을 만들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열희 언론인
기업의 옥석은 안가리고…
박근혜 정부가 코스닥시장에도 칼을 들었다. 기술기업들의 자금조달이라는 본래 설립 취지에 맞게 진입장벽을 낮추고, 코스피와의 차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개선방향을 보면 코스닥시장 관리체제만 일부 바꿨을 뿐 시장 자체의 효율성 증진을 위한 조치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의 코스닥 개선 방향은 코스닥시장위원회 독립기구화와 상장요건 일부 완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증권거래소 이사회 아래에 두던 코스닥시장위원장을 별도 독립기구화 해 주주총회 바로 아래에 두겠다는 방향이다. 그런데 현재 증권거래소의 주주총회는 유명무실이다. 공공기관이다 보니 정부가 주주권을 사실상 대행하고 있다.
시장감시위원회의 경우 이미 ‘낙하산 착륙지’가 된 지 오래다. 코스닥시장위원회에 외부 전문가를 대거 참여시킨다고 하지만 7명의 위원 가운데 4명이 사실상 정부 입김 아래 있는 금융위원회, 중소기업청, 대한변호사협회, 한국거래소 추천이다. 회원사인 증권사 몫 1명을 제외하면 7명 가운데 업계 몫은 코스닥협회, 벤처캐피탈협회 추천 2명뿐이다.
상장요건 완화도 기술기업 우대와는 거리가 멀다. 상장 전 1년간 최대주주 변경 및 증자를 제한(자본금 100% 이내)한 현행 기준을 사안별로 실질적인 경영권 변동, 단기차익 목적의 증자 여부를 가려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그만큼 자의적 해석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익명의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역대 정권 대부분이 코스닥 시장 진입요건 강화, 코스닥시장 위상강화 쪽으로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코스닥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양질의 기업과 불량한 기업을 제때 가려내지 못한 데 있다”면서 “시장을 관리하는 높은 자리 몇 개 조삼모사하고, 진입장벽 좀 더 낮춘다고 투자자 입장에서 코스닥에 더 투자해야 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