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 감독이 <설국열차>에서 창조한 ‘인류 최후의 생존지역’은 카오스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햇볕 한줌 들지 않는 빈민굴 같은 맨 뒤쪽의 꼬리칸과 기차를 창조한 절대권력자 윌포드(에드 해리스 분)가 사는 맨 앞 쪽의 엔진칸은 그 나름대로의 역할과 질서를 가지고 하나의 유기체 같은 생태학적 사회를 이루고 있다.
절대권력자 윌포드에게는 꼬리칸의 사람들이 주기적으로 일으키는 폭동도 기차의 인구와 균형을 조절하기 위해 필요한 ‘예상가능한 일’이다. 권력을 가진 계층은 그렇지 않은 계층을 조종하고 지배하기 위해 때로는 공포정치를, 때로는 주입식 교육을 실시한다. 현실적이지 않은 공간에 창조된 봉 감독의 ‘노아의 방주’에는 권력구조에 대한 현실이 반영돼 있다.
하지만 관객이 현실과 영화의 기시감을 느낄 때쯤 봉 감독은 약속이나 한 듯 허를 찌르는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엔진칸만 장악하면 꼬리칸을 해방시키고 마침내 기차 전체를 해방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꼬리칸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엔진칸을 마주한 순간 무엇인지 모를 만감이 교차한다.
봉준호 감독, 고아성, 송강호(왼쪽부터).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과 함께 기차도 계급과 계급이 부딪히고 피와 땀이 뒤엉키며 엄청난 에너지로 달려 나간다. 하지만 <괴물>의 합동장례식장에서 한 가족이 뒤엉켜 오열하는 장면과 <마더>에서 엉뚱한 증거를 잡고 돈키호테마냥 당당하게 걸어가던 엄마를 보며 웃을 수 있었던 봉준호 식 유머코드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기차는 달릴 뿐이다.
화려하고 스펙터클하기만한 인류 최후의 날과 관련한 영화에 질린 분이라면 새로운 문법으로 ‘인류 최후의 생존자’를 그린 <설국열차>를 추천한다. 개봉은 오는 8월 1일이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발레 소년서 혁명전사로 ‘컴백’
<설국열차>에서 제이미 벨이 표현한 에드가는 기차안의 불합리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며 행동을 촉구하는 열혈 10대 소년으로 등장한다. 때를 기다리자는 커티스와 달리 빨리 폭동을 일으켜 기차 속 세상을 뒤집고 싶은 뜨거운 피를 가진 에드가는 <빌리 엘리어트> 속 빌리의 열정과 순수함만큼은 그대로 안고 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