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5일 현오석 부총리(오른쪽 두 번째)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제공=기재부
한국으로 시집오는 외국인 신부가 늘면서 중요시되고 있는 다문화정책은 소관업무가 여러 부처로 나누어져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제각각 다문화가정 지원 정책을 펴는 바람에 예산 중복과 비효율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보다 못한 정치권 일각에서는 아예 이민청을 신설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10년째 지지부진한 공항입국장 면세점 설치 문제는 관련 부처 간 입장차이만 확인시키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관광객 유치와 투자활성화에 필요하다며 찬성하고 있지만, 기획재정부는 세수감소가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육상풍력발전을 둘러싸고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가 정면충돌했다. 산업부가 환경부에 사업추진 예정지 14개소에 대한 입지 적정성 검토를 요청했는데, 환경부가 14개소 모두에 대해 적정하지 않다는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새 정권이 들어서면 정부 부처 공무원들은 자신의 영역을 확고하게 지키기 위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규제나 정책 등을 내놓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부처 간 힘겨루기를 그치게 하려면 각 부처 장관들 수준에서 논의와 협상, 양보 등이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부처를 장악해야하는 장관 입장에서는 함부로 양보했다가는 부처 내에서 신망을 잃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장관들이 간혹 부처 관료들이 내세운 논리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양상을 보이는데 지금이 그런 상황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부처 간 갈등으로 사업 추진 자체가 무산된 경우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6월 영종도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설치를 신청한 일본계 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와 중국·미국계 자본 합작사인 리포&시저스 컨소시엄에 대한 사전심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5조 원 규모의 직접투자가 무산되면서 카지노 유치를 지원했던 산업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장관이 부처를 장악할 수 있는 힘은 부처나 산하기관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인사권을 강력하게 행사하면 관료들은 생사여탈권을 쥔 장관의 말을 따르게 되어 있다. 특히 정치인 출신의 경우 관련 지식이 상대적으로 빈약하기 때문에 인사권이 가장 큰 힘이 된다”면서 “그러나 지금 정권에서 대부분 인사가 청와대 말 한마디에 좌우되는 일이 반복되자 관료들에 대한 장관의 장악력이 떨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전문성을 지닌 관료들을 우대해주는 것도 일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부처 간 칸막이가 여전하자 박 대통령이 직접 상황 정리에 나섰지만 문제가 해결될지는 불투명하다. 박 대통령은 7월 15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새 정부 들어 부처 간 칸막이를 제거하고 협업과 정책 의견 조율을 하라고 누차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공항 면세점, 다문화 정책에서 부처 간 협업과 조율이 안 되고 엇박자가 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부처 간 칸막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관보다 상위직인 경제부총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있었고, 박근혜 정부에서 부활됐다. 그런데 현오석 부총리가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현 부총리가 워낙 신사형이어서 부처 간 갈등을 주도적으로 풀어나가기를 기대하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