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농협의 신경분리에 이어 지난해 초 출범한 농협금융도 우리은행 인수의 유력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지만 본격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출범 후 지금까지 실적이 썩 좋지 못해 우리은행 인수 가능성에 큰 힘이 실리지는 않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도 어렵다고 하는 마당에 KB금융을 제외하면 우리은행을 인수할 여력이 있는 금융사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여전히 KB금융의 우리은행 인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금융권 분위기를 전했다.
‘민영화 실패’의 걱정이 커지는 상황에서 분위기를 바꾼 것은 교보생명의 우리은행 인수전 참여 소식이다. 지난해 우리금융 인수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찰을 포기한 바 있는 교보생명은 이번에 다시 우리은행 인수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개별 금융사가 금융지주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다는 금융지주회사법에 위배돼 입찰을 포기했지만 이번에는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이 합병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걸림돌이 사라져 교보생명의 인수 가능성에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방은행계열과 우리투자증권 매각을 마무리한 후 내년 1월 중 우리은행 매각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동시에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 합병을 추진한다. 이는 금융지주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금융지주가 아닌 은행을 매각하는 형태로 진행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금융지주와 은행을 합병해 은행 형태로 전환한 후 예금보험공사가 우리은행 지분을 매각하는 형식이다. 즉 금융지주를 파는 게 아니라 은행을 파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지주법에 저촉되지 않아 개별 보험사나 금융사도 우리은행 인수전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ING생명 인수전에서 사실상 탈락한 것도 교보생명이 우리은행 인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보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지난해와 달리 제도적 벽이 없어지고 환경이 나아질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상태여서 검토 수준에 있다”고 말했다.
교보생명의 우리은행 인수 참여에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재계 관계자는 “교보생명은 인수전이 열릴 때마다 단골손님처럼 등장했으나 성사된 적은 거의 없다”면서 “워낙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데다 지금까지는 말만 무성했지, 실제로 적극적으로 움직였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교보생명은 그동안 의사와 상관없이 종종 M&A(인수·합병) 시장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돼왔다. 그때마다 교보생명과 신창재 회장은 ‘내실경영’을 강조하며 보수적인 자세를 유지하기 일쑤였다. 보험업과 증권업에서 두루 잘나가고 있었기에 굳이 신사업을 확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으로서 신 회장이 기업경영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신창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졌다. ING생명과 일본 온라인 보험사 SBI손해보험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일본 온라인 보험인 라이프넷생명보험과 합작, 국내 최초 온라인 생명보험사인 ‘e교보’를 오는 9월 출범할 예정이다. 신 회장은 ‘e교보’에 대해 직접 “4~5년 안에 손익분기점 달성(흑자)을 목표로 두고 있다”고 밝힐 만큼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신 회장과 교보생명의 이 같은 모습에 대해 “보험업계 환경이 변화하고 갈수록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면서 신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다. 증권업계 불황이 지속되면서 교보증권의 실적이 나빠진 것도 신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변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교보생명의 우리은행 인수전 참여를 놀라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워낙 규모가 큰 데다 은행업을 해보지 않은 교보생명이 4조 원이 넘는 자금을 한꺼번에 투입할는지, 그 진정성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우리은행 매각과 관련해 점점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흥행을 위해 교보생명이 이용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태세라고 알려진 것과 달리 교보생명 측은 현재 꽤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시장이 흔드는 것 같다”며 “예전부터 은행 쪽에 관심이 있고 우리은행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업성을 따져본 상태도 아니고 내부도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몸을 사렸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