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 회장. 연합뉴스
이쯤 되면 지난 두 달간 셀트리온 주가를 끌어올린 주역이 JP모건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JP모건은 셀트리온과 인연이 남다르다. 셀트리온의 계열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올 1월 유상증자를 통해 2500억 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투자자는 JP모건 계열 투자회사로 알려졌다. JP모건이 셀트리온그룹에 2500억 원 넘는 돈을 빌려줬다는 뜻이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셀트리온이 만드는 제품의 판매권을 가진 회사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얼마 전 셀트리온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이 매각작업을 진행하는 주간사도 JP모건이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잘돼야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수 있고, 셀트리온 주가가 올라야 매각주간사인 JP모건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매각주간사가 인수·합병(M&A) 대가로 받는 수수료는 보통 매각자산의 규모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셀트리온 주가가 오르면 좋아할 곳이 또 있다. 싱가포르의 국부(國富) 펀드 테마섹이다. 테마섹 계열 아이온인베스트먼트(Ion Investment)는 셀트리온 150만여 주(지분율 14.84%)를 가진 2대 주주다. 지난 6월 셀트리온 최대주주인 셀트리온지에스씨로부터 442만 주를 주당 약 3만 4000원에 매입했다. 테마섹으로서는 주가가 오를수록 좋다.
현재 서정진 회장 측과 테마섹 간에는 주식 관련 계약이 체결돼 있다. 어느 한 쪽이 보유주식을 매각할 때 다른 한 쪽이 이를 먼저 살 수 있는 권한이다. 만약 서 회장이 보유주식을 팔려고 할 때 테마섹에게 먼저 물어봐야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어느 한 쪽이 주식을 제삼자에게 매각할 때는 다른 한 쪽도 같은 조건으로 주식을 함께 팔 수 있도록 약속돼 있다. 만약 테마섹이 아닌 곳에서 서 회장 측 보유지분을 매입한다면 이때 테마섹 보유주식도 함께 매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서 회장은 이미 보유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주가가 올라 매각가치가 높아지면 테마섹도 같은 조건으로 보유주식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최근 증시에서는 셀트리온이 유럽계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에 인수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회사 측은 이를 부인했지만, 만약 지분매각이 임박했다면 테마섹으로서는 주가를 끌어올릴 이유가 충분한 셈이다.
셀트리온의 주가가 몇 달 동안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사진은 인천시 연수구에 있는 셀트리온 본사 전경. 연합뉴스
셀트리온은 지난 5월 발행된 전환사채 가운데 일부를 사들여 현재 남은 전환사채 규모는 2568억 원 상당이다. 주식으로 바꾼다면 362만 주에 해당한다. 셀트리온은 주가가 7만 750원을 밑돌면 전환사채 원리금을 상환할 부담이 커진다. 반면 주가가 7만 750원을 웃돌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줄어드는 대신 시가보다 싼 값에 주식을 발행하면서 그 차액만큼 부담을 져야 한다. 7월 31일 6만 5000원을 넘던 셀트리온 주가가 8월 들어서자마자 하한가로 곤두박질 친 데는, 아직 전환기간이 1년 이상 남았음에도 전환사채 관련 부담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6월 28일 셀트리온은 유럽의약품청(EMA) 유럽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로부터 신제품 ‘램시마’에 대한 승인 권고의견을 얻어냈다. 회사 측은 이를 바탕으로 유럽연합(EU) 27개국 등 유럽 내 총 30개국에서 판매허가를 받을 계획이다. 램시마가 속한 약품의 잠재시장은 세계적으로 3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대로 판매만 된다면 ‘대박’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제약부문 애널리스트들의 평가는 여전히 냉랭하다. 실제 판매가 내년 이후에나 가능한 데다, 여러 차례 제기된 회계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연구원은 “제약분야 담당종목에서 셀트리온은 사실상 제외됐다”며 “최근의 주가 급등이 펀더멘탈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닌 단순 수급 영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연구원은 “셀트리온헬스케어 대상 매출 인식에 따른 회계 문제, 실제적인 매출 발생 상황 등을 회사 측에 요구했지만 만족할 만한 자료를 얻지 못했다”며 “기업분석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에 관계 발언 및 보고서 작성을 유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한 달간 외국인이 셀트리온 주식을 1052억 원어치나 순매수할 동안 기관은 불과 195억 원 매입한 데 그쳤다. 개인은 오히려 1131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외국인이나 일부 기관투자자들을 제외하면 셀트리온을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익명의 한 기관투자자는 “램시마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서정진 회장을 비롯한 기존 주주들이 굳이 회사를 통째로 팔겠느냐”면서 “증시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공매도 때문에 ‘경영 못해먹겠다’는 발표만 봐도 밖에선 모르는 속사정이 있을 것으로 의심돼 투자가 주저된다”고 말했다.
최열희 언론인